최근 우리 바이오기업들이 신약개발의 마지막 관문인 임상 3상에서 연달아 성공하지 못하면서 바이오시장의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타겟발굴, 후보물질 도출, 비임상, 임상, 신약허가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기간도 10-15년이 걸린다. 지난해 승인된 신약 중 개발완성에 20년 이상 걸린 것도 12개나 된다. 실패비용을 포함한 투자비용도 1조 원 이상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기초연구와 임상시험 사이에는 단절, 즉 죽음의 계곡이 존재하며, 후보물질 1만 개 중 신약 승인을 받아 출시될 확률은 1개(0.01%)에 불과하다. 임상단계에 진입했더라도 최종 승인을 받을 확률은 10%에 불과하다. MIT 슬론경영대학원의 앤드류 로(Andrew Lo) 교수팀은 금융공학기법을 이용, 프로젝트당 5%의 성공확률을 가진 150개 프로젝트에 각 2억 달러씩 10년간 총 300억 달러(36조 원)를 투자하는 민-관 메가펀드 조성을 제안했다. 이 펀드에서 적어도 2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성공할 확률은 99.6%, 5개가 성공할 확률은 87.5%이고, 2개 이상 성공할 시 기대수익률은 11.9%로 충분한 매력이 있는 펀드가 될 수 있다는 분석결과도 제시했다. 이러한 방식의 위험관리는 포트폴리오 이론에 기반을 둔다. 포트폴리오는 크기와 다양성이 커질수록 기대수익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수익변동성이라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펀드 규모를 키워서 더 많은 프로젝트를 포함시키는 것이 해법이라면 대형 제약사들의 신약개발 성공률이 가장 높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는 반대로, 2018년 대형 제약사가 전체 승인 신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6%에 불과했다.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상기 메가펀드의 기본 전제는 우수한 후보물질을 이미 많이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으려면 와해성 혁신을 통한 신규성(퍼스트인클래스)이 핵심이다. 앤드류 로 교수팀에 따르면 미국에서 우수한 후보물질임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받지 못해 임상을 하지 못하고 있는 물질이 20년 치나 밀려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 조사결과에 따르면 해마다 신규로 창출되는 신약후보물질은 200개 정도밖에 안된다. 이 중 신규성을 갖는 물질은 10개 내외에 불과하다. 우리 바이오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신약 파이프라인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 정부가 신약개발에 투자한 3059억 원 중 36.8%가 인프라 조성에, 14%는 임상에 투자됐다. 후보물질도출·최적화와 타겟발굴·검증 단계에 대한 투자는 22.0%와 12.2%에 불과했다. 정부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신규성이 있는 기초연구를 지원해 우수한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이를 기업의 파이프라인에 연결시켜 주는 데 투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우수한 기초연구 성과가 실제 환자에서 적용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현재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를 위한 중개연구 플랫폼을 구축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학병원 임상의들을 초빙해 연구원 내 실험실에서 기초과학 연구자들과 함께 기전연구에서부터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이를 임상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는 임상단계에서 실패할 위험을 줄이는 것보다 기초연구와 중개연구 단계에서 적극 위험을 받아들여야 할 시점에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300억 달러의 초대형 펀드가 아니라 최첨단 기초연구 분야에서 실패위험을 무릅쓰고 산·학·연이 공동으로 혁신신약 후보물질 발굴과 중개연구를 이끌 3개의 장기 대형 연구개발 프로젝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