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함께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한 도시 한 책`운동이 있다. 1998년 미국 시애틀 공공도서관 워싱턴 북센터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If All of Seattle Read the Same Book"이라는 표제 아래 출발한 `한 도시 한 책`은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등 전세계로 확산됐다. 우리나라도 2003년 도입돼 30개 넘는 지자체가 풀뿌리 독서운동으로 `한 도시 한 책`을 진행하고 있다. 파편화되고 분절된 현대사회에서 `한 도시 한 책`은 동일한 책을 매개 삼아 다양한 주민들이 토론하고 문화체험을 나누며 지역공동체를 만들어보자는 의미가 담겼다.

한 책 읽기가 꼭 도시에만 한정될 필요는 없다. 세대나 성별을 넘나들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세대간 대결을 부추기는 담론의 홍수 속에서 청년세대와 중·장년 세대들이 `90년생이 온다`거나 `청년팔이사회`, `불평등의 세대`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눈다면 어떨까? 여성과 남성이 `현남오빠에게`를, 부모와 자녀가 `이상한 정상가족`을 같이 읽고 서로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나눈다면 무슨 변화가 일어날까?

한 책 읽기는 나라를 달리해서도 가능하다. 국경을 접한 남·북이 한 작가의 책을 읽고 교류할 수 있다면 심리적 거리가 훨씬 가까워지리라. 거기에 맞춤 한 작가로 민촌 이기영이 있다. 이기영은 1895년 아산 회룡리에서 태어나 서너살 무렵 천안 안서동 중암마을로 이사 왔다. 1924년 `개벽`으로 등단했으며 1933년 7월 천안으로 내려와 성불사에서 40일간 `고향` 초고를 완성했다. 한국전쟁 뒤 북한에서 소설 `두만강`으로 인민상을 수상했으며 1984년 사망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 만큼 탁월한 문학성을 인정받았던 대문호 민촌 이기영의 계승사업이 천안에서 활발하다. 식민지 농촌현실을 예리한 시각으로 그려낸 그의 소설 `고향`의 배경이 된 천안시 유량동 일대에는 소설과 민촌 삶의 흔적을 따라 거닐 수 있는 `고향`길이 민간의 힘으로 조성됐다. 민촌이기영`고향`문화제가 천안에서 매년 열리는가 하면 남북을 잇는 민촌의 위상을 통일시대 자양분으로 삼고자 기념사업회 창립도 본격화되고 있다. 남·북 사람들이 어울려 천안의 `고향`길을 걸으며 정담을 나누는 일, 불가능한 걸까? 찬바람 불고, 귀뚜라미 울고, 계절은 어느 덧 독서에 좋은 날들이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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