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식 한남대 교수
신윤식 한남대 교수
얼마 전 여수항의 하멜 등대에 간 적이 있었다. 하멜(Handric Hamel)이 13년 간의 조선억류를 끝내고 탈출한 장소인데, 이를 기념해 부둣가에 등대를 세워 놓았다. 하멜은 일본으로 항해하다가 1653년에 제주도에 표류한 36명의 서양인 중 한사람이다. 하멜 일행은 네덜란드에서 출발, 인도네시아를 거쳐 나가사키로 항해하던 동인도회사의 무역선이었다. 조선으로선 그들이 그렇게 먼 곳에서 왔을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으며 그저 류쿠국(오키나와) 너머에서 표류해온 남만인정도로 알았다. 조선인에게 먼 바다란 커다란 장애물이며 세상의 끝 정도로만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하멜 일행에게 바다는 신세계로 들어가는 길이자 보물섬을 숨겨놓은 곳이었다.

우리는 근대역사에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가장 먼저 발견했고, 마젤란이란 사람이 선박을 이용해 세계 최초로 지구 일주에 성공했다고 배웠다. 또 디아즈(Diaz)라는 포르투갈 사람이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발견했고, 바스코 다가마(Vasco da Gama)가 최초로 희망봉을 돌아 유럽에서 인도까지 왕복 항해에 성공했다고 알고 있다. 소위 위대한 모험가라는 인물들은 모두 유럽인 일색이다.

그런데 왜 이런 역사적인 일에 서양인만 거론되고 동양인들은 한명도 거론이 되지 않을까? 동양이 서양에 비해 잘 살지 못 살고 문명이 낙후돼서 그럴까?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적어도 19세기 초반 까지는 동양이 유럽보다 잘 살았다. 중국은 요즘의 미국이고, 동남아시아 지역을 비롯해 아랍인, 페르시아를 비롯한 아르메니아인들도 상업으로 번성해 오히려 유럽인들보다 부유했다. 반면 유럽은 중세부터 지역과 민족, 종교 간 갈등을 겪으면서 전쟁과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서 격렬한 투쟁을 통해 중앙집권적인 왕권국가로 발전했다. 왕과 귀족은 부와 권력을 보유했지만 일반 국민들은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동 시대에 동양을 대표하는 명나라는 아라비아 출신의 환관 정화를 대장으로 임명해 아시아 및 인도양 해역을 비롯, 멀리 동아프리카 연안까지 대규모 선단을 파견하기에 이른다. 크고 작은 범선 160척에 3만 명의 군사가 동원된 초대규모의 해양원정 사업이었다. 1405년부터 무려 28년간 7차례에 거쳐 30여개 지역을 방문(?)한 것이다. 영국 사학자 멘지스는 정화선단이 1421년에 아메리카 전 대륙을 방문했으며, 호주를 발견했고, 아프리카의 서해안까지 왔다고 주장한다. 남미에서 옥수수를 가져왔고 볍씨를 아메리카에 전달했다고 주장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정화는 콜럼버스보다 71년이나 앞서 아메리카를 발견한 셈이고, 마젤란보다 100년이나 먼저 세계 일주를 한 인물인 것이다. 이렇듯 서양보다도 먼저 원양항해에 나섰던 동양이지만 훗날 세계의 바다는 동양이 아닌 서양인이 지배하게 된다. 동양은 서양보다도 먼저 바다를 지배했지만 `땅은 넓고 물자는 풍부하니 바다는 필요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바다로 통하는 모든 문을 닫고 만다. 조선도 바다를 통한 모든 출입을 엄격히 금지시킨다. 때문에 바다에서 온 하멜은 당연히 억류의 대상으로 조선에서 여생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어디서 왔건 누구이건 출입이 금지된 먼 바다에서 왔으니 감시 대상으로 보호관찰을 해야 했던 것이다.

중국이 바다를 포기하자 후발주자인 서양인들은 동양의 바다에 앞다퉈 진출한다. 그들은 대포와 총으로 무장하고 아시아와 인도양의 바다를 휘젓고 다니게 된다. 무력으로 동양의 주요 항시(무역항)를 정복하고 무역을 독점하고자 했던 것이다. 주인 없는 텅 빈 바다에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쉽게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동양은 세계바다의 패권을 서양에 내주게 된다. 결국 바다를 지배한 서양이 근대 세계를 지배하게된 것이다.

서양이 바다를 지배한지 500년이 지난 지금의 바다는 누가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도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일까?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 우리의 위치는 어디쯤에 있을까를 생각해 볼 때다. 신윤식 한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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