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글/ 공진호 옮김/ 다산책방/ 424쪽/ 1만 8000원

낭만주의의 대가 들라크루아는 고루하고 성실한 금욕주의자였고, 사실주의의 대가 쿠르베는 모든 프랑스 여자가 자신을 택할 거라고 자신만만해하다 시골 처녀에게 거절당한 나르시시스트였다. 드가는 여성을 혐오한다는 혹독한 오해를 받은 반면 보나르는 한 여인의 그림을 385점이나 그린 지독한 사랑의 상징이 됐다. 타고난 천재 같기만 한 피카소는 차분하고 도덕적인 단짝이었던 브라크를 평생 질투했다. 마네는 모델에게 생동감 있게 움직이라고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세잔은 사과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호통 치다 화가 나면 붓을 내팽개치고 화실을 뛰쳐나갔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 문학의 제왕 줄리언 반스의 첫 예술 에세이가 출간됐다. 이 책은 낭만주의부터 현대 미술을 아우르는 17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소설가로서 그는 눈앞에 펼쳐진 그림을 두고 작품의 배경이 된 사건과 그것이 그림이 될 때까지의 과정, 그를 거쳐간 손길과 화가의 삶, 그 앞에 섰던 다른 이들의 감상까지 집요한 조사와 정교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엮어냈다. 세부적인 것들을 포착해내는 타고난 소설가의 눈으로 그림을 바라보는 그는 드가와 브라크, 마그리트처럼 친숙한 화가들부터 아직 인지도는 낮지만 훌륭한 화가들의 진면목을 알게 한다.

또 예술에 대한 오랜 관심과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미술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제안을 내놓는다. 그는 "예술의 미덕이나 진실성은 개인의 미덕이나 진실성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하면서도 "나쁜 미술, 즉 거짓을 말하고 속임수를 쓰는 미술 작품은 화가가 살아 있는 동안에야 무사할지 몰라도 "결국 들통나게 돼 있다"고 일갈한다. 하지만 결국 당대의 또는 후대의 수많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미술은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닌다는 그의 결론은 미술 앞에 선 수많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림 한 점 앞에 선 우리 눈앞에 그것이 그려지던 순간의 한 토막이 수많은 장면이 되어 스쳐지나가고, 때로는 우습고 친근하며 때로는 경이롭고 가슴 뛰게 하는 주인공들이 마치 살아 숨 쉬듯 말을 건네온다. 저자는 그렇게 뻔한 비평 대신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다가와 지극한 즐거움을 선사하며 그림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다.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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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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