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선거가 되었든, 선거를 앞두고 4,5,6개월 전에, 소리 소문 없이 줄기차게 열리는 행사가 있다. 정치인이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으면 정치인이 아닌 것처럼 출판기념회가 극성을 부린다. 정치인은 왜 그렇게 출판기념회에 열성적일까?
여러분이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첫 번째 이유. 정치자금을 걷기 위해서.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법 제한을 받지 않는다. 금액한도, 모금액수, 횟수에 제한이 없다. 돈을 준다고 해도 안 갈 분도 있겠지만, 돈 내러 가야할 분도 많은가 보다.
돈 때문이 아닌 정치인도 있을 테다. 아무리 모금액수에 제한이 없다지만, 출판기념회로 거둬들일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되겠는가. 돈밖에 없는 정치인에게는 돈은 별로 상관없는 문제일 것이다. 책을 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할 수도 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책이 어마어마하게 나오지만 책 읽는 사람은 드물다. 독자는 거의 없지만 책을 쓴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크다. 책을 내야 인격을 갖춘, 지식을 겸비한, 소양이 높은, 한 마디로 훌륭한 정치인 같다. 즉 책은 정치인의 필수 스펙 혹은 아이템 혹은 보증수표로 자리 잡았다. 책도 안 낸 자는 정치인 자격 자체가 없어 보인다. 정치인이 책 내는 것을 꼴 같지 않게 보는 유권자도, 정작 책이 없으면, 책도 못 내는 무식쟁이 후보라고 깔볼 테다. 그래서 정치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혹은 꿩 먹고 알 먹기로 책을 내게 된다. 안 낼 수가 없으니 내고, 필수 스펙 쌓고 정치자금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책은 정치인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대개의 정치인은 책을 낼 때 당당히 밝힌다. 내가 썼다고. 그 책이 자서전이든 회고록이든 대담록이든 정치활동자랑담이든 대중교양서든 수필집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쓴 척 한다. 진실로 자기가 다 쓴 분도 있다. 심지어 지난한 수정 작업도 스스로 하신 분도 있다. 그런 분은 `저자` 맞다.
이런 경우는 어떤가. 정치인은 인터뷰만 했다. 그 인터뷰를 바탕으로 어떤 작가가 원고를 써주었다. 텔레비전에서 보셨다시피 말 되게 말하는 정치인이 드물다. 그 말 되지 않는 말을 읽을 수 있는 글로 변환하는 것은 청계천복원사업 못지않다. 정치인이 자료(메모, 회의록, 신문기사 등등)만 주고 대필자가 다 썼다. 정치인이 에이포지 10장 원고를 주었는데 대필자가 100장 분량으로 늘려 썼다. 이렇게 정치인이 말이나 자료나 일부 원고를 제공했지만 대필자가 거의 다 쓴 책이 숱하다.
하나같이 `정치인 아무개 지음`으로 출간된다. 제1저자는 분명 대필자다. 정당한 책이라면 `아무개 작가가 쓴 정치인 아무개 이야기`라는 식으로 나와야 한다. 정치인은 말할 테다. 내 이야기인데 뭐가 문제야! 그게 더 문제일 수 있다. 책에 나오는 내용이 그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내세울 만한 것은 엄청 자랑하고, 꺼림칙한 것은 전혀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허위 기억`과 `자기 모순`과 `위증`이 난무하는 것이다. 대필자의 교언영색을 `진짜`로 착각해버리면 더욱 답이 없다.
저자 표기 문제와 책에 담긴 의심스러운 문장들만으로도, 검찰과 언론이 누구네 파듯이 하면 도무지 안 걸릴 재간이 없을 테다. 정치인에게는 책이 계륵이 돼버린 셈이다. 정치인의 절대 스펙인 책을 안 낼 수는 없다. 책을 내니 뿌듯하고 돈도 생기고 좋기는 하다. 하지만 그 책이 언제 부메랑이 돼서 날아올지 모른다.
작가로서 조언을 드리자면, 가장 후환이 두렵지 않은 방법은 진솔하게 자료를 제공하고, 진솔하게 저자 표시를 하라는 것이다. 선거일 90일 이전에 무수히 쏟아지는 정치인의 책 중에 그나마 읽을 수 있는 책은 진솔하려고 노력한 책뿐이다.
김종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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