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든 길도 길이다] 김여옥 지음/ 책만드는집/ 164쪽/ 1만 원

검불 같은 안개를 털어내며/ 어머니는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사는 게 별거 있간디/ 모시 고를라다 삼베 골르는 거제// 꿈꾸던 자의 빛나는 개안(開眼)/ 효색이 안개를 밀어내고 있다// 잘못 든 길도 길이다(誤道是道) -잘못 든 길도 길이다 중에서-

김여옥(56)의 시를 읽는 것은 시인의 아픈 정서에 동참하는 일이다. 이 아픔은 간혹 판단 정지를 불러올 만큼 정서의 과잉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낭만주의자의 정서 과잉처럼 대책 없이 흘러넘치지는 않는다. 이것은 시인이 그 아픈 정서를 적절하게 맺고, 어르고, 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이 궁극적으로 이르려는 것 역시 삶의 과정에서 응어리진 마음을 어르고 달래서 그것을 신명 나게 풀어내려는 그늘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그늘은 삶의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들 중 특히 죽음에 대한 자의식에서 드러난다. 죽음은 인간이 맞닥뜨려야 하는 숙명 같은 것이지만 그것이 일정한 생의 보편적인 흐름 속에서 발생한 것이냐 아니면 우연히 돌발적인 상황 속에서 발생한 것이냐에 따라 응어리진 마음의 정도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의 그늘은 후자와의 만남을 통해 보다 강렬한 존재성을 드러낸다.

`그 나무에는 그늘이 있어`라고 할 때의 그늘은 부정이나 긍정 어느 한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의미 지평을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그늘은 프로이트의 무의식화된 욕망이나 융의 그림자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흔히 자아의 어두운 면으로 명명되는 그림자의 경우에는 그 내부에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에너지 덩어리가 응축되어 있어서 그것이 의식의 차원으로 투사되는 경우 이성에 의해 구축된 상징계가 전복될 위험성이 있다. 이에 비해 그늘은 그림자의 상태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세계이다. 그늘의 세계는 그림자의 세계가 은폐하고 있는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덩어리를 일정한 삭힘의 과정을 통해 풀어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1991년 월간 문에사조에 연작시 `제자리 되찾기` 5편이 당선돼 문단에 나온 시인은 자유문학 편집장·발행인, 월간문학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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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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