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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고공농성

2019-11-25기사 편집 2019-11-25 08:24:03      윤평호 기자 news-yph@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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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공농성의 역사는 일제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맨 앞 자리에 여성 노동자가 있다. '강주룡'이다. 강주룡은 1901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났다. 항일 독립운동에도 몸 담았던 그는 1931년 5월 평양의 평원고무공장에서 임금 인하에 맞서 파업을 주도하던 중 공장에서 쫓겨나자 을밀대 고공농성을 감행했다. 광목을 찢어 만든 줄을 타고 지상 12m 을밀대 지붕에 올라 "여성해방, 노동해방"을 외쳤다. 고공농성 모습이 신문지상에 실리며 큰 화제가 됐다.

강주룡은 8시간만에 일경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내려왔다. 옥중단식도 불사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건강이 악화돼 보석으로 풀려났다. 출감 두 달 만인 1931년 8월 13일 30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지난해 박서련의 소설 '체공녀 강주룡'을 통해 우리 곁에 소환됐다.

2018년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돌파했다. 그새 민주정부를 자임하는 정권도 몇 차례 집권했지만 고공농성은 여전히 우리 사회 익숙한 풍경이다.

민주노총 부산본부의 김진숙 지도위원은 2011년 영도조선소 85 크레인에서 309일간 고공농성을 계속했다. 지난 1월 마무리된 75m 굴뚝 위 파인텍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은 426일 세계 최장을 기록했다. 서울 한복판 강남역 사거리 교통 폐쇄회로 철탑에서는 삼성해고동자 김용희씨가 160일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하늘 아래 평안한 땅, 천안은 지난 14일부터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서상옥(53) 사무국장이 11일째 고공농성중이다. 일봉산의 참나무 세 그루를 6.2m 높이에서 연결해 만든 농성장은 노지와 다름 없어 겨울로 접어든 산 속의 한기가 고스란히 엄습한다. 그는 무기한 단식농성으로 21일부터 곡기까지 끊었다. 여성 환경운동가가 고공농성에, 단식까지 결행한 이유는 간명하다.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파괴될 위기에 처한 동네산을 살리기 위해서다.

사람은 지상의 존재다. 지상의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고공을 향하지만 그곳이 종결점이 돼서는 안된다. 뭇 생명과 어울리는 지상의 평화, 아직은 요원한 걸까.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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