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는 접바둑이란 방식이 있다. 실력차가 나는 상대끼리 대국할 때 승부가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수에게 미리 바둑돌을 일정 갯수 둘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어드밴티지다. 바둑계 정상에 서는 기사들에게 종종 묻는 질문이 있다. "만약 바둑의 신이 있다면 몇 점을 접고 두면 상대할 수 있을까?"

최근 은퇴한 이세돌 9단은 당시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두 점이면 충분합니다." 한 판의 바둑에서 실수는 2번 이내로 하겠다는 자신감이다. 또 "만약 목숨을 걸라고 한다면 석 점은 깔아야겠죠"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자신만만하던 이 9단은 `신의 한수`가 아니라 `기계의 수` 때문에 은퇴했다. 협회측과 불화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바둑계 `멘탈 갑`이라 불리던 이세돌임을 생각해보면 결정적 이유는 아니다. 바둑판 위의 `전신(戰神)`이 칼을 거두게 한 건 인공지능의 압도적인 기량이다.

이 9단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제가 바둑의 1인자라고 치면 `세상에서 최고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다` 이런 자부심이 있었는데 인공지능 컴퓨터가 나오면서, 아무리 잘 둬도 못 이길 것 같더라. 어차피 최고가 아닌데. (인공지능이 은퇴의)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9단은 지난 2016년 구글의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전에서 1승을 따내며 유일하게 인공지능을 이긴 `인간`이 됐다. 바둑 인공지능은 3년 사이 더욱 정교해져 지금은 프로기사들이 인공지능한테 바둑을 배울 정도다. 앞으로 인간이 이길 가능성은 결코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앞으로 많은 분야에서 이세돌 9단처럼 일자리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기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9단이 인공지능과 `치수 고치기`로 은퇴 대국을 벌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치수 고치기란 서로 기량을 겨루어 접바둑에서 몇 점이나 어드밴티지를 줄 것인가 결정하는 대국이다. 3차례 경기에서 인간과 인공지능간 실력 차이가 확인된다. 이 9단이 모두 진다면 `신의 치수`라는 3점을 넘어선 경계가 그어질 수도 있다.

인공지능은 날이 갈수록 강해질 것이다. 그래도 경기가 끝난 후 "아직 신의 한수라 말하기엔엔 부족하다"고 말하는 이 9단을 보고 싶다.

이용민 지방부 차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