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에는 발걸음을 어지러이 걷지 말라. 오늘 나의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들의 길이 된다.` 서산대사가 지은 시다.

길 위에 선 우리는 모두가 동반자다. 인생이란 길 위에서 바라보면 욕심많은 사람, 시기에 불타는 사람, 어리석은 사람, 교활한 사람…. 각양각색의 인간군상이 빚어내는 모습은 증오, 질투, 분노, 고통, 질병, 노화 등 마치 판도라의 항아리가 열린 듯한 풍경이다.

길을 가다 보면 종종 서로 부대끼기도 한다. 생각이 다른 이를 만나 어깨라도 부딪치게 되면 화가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렇게 76억개의 다른 발걸음들이 인류를 만든다. 다른 이들이 없다면 우리는 잘 닦여진 길이 아니라 무성하게 자란 풀섶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가장 큰 두려움은 다툼이 아니라 다툼마저 없는 상황에서 나온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서 윌 스미스는 개의 죽음을 슬퍼하며 자살 시도까지 하고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는 고작 배구공과 이별에 오열한다.

꼭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휴머니스트가 될 필요는 없다. 그저 이런 마음가짐만으로도 관계와 관계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조금은 줄어들 수 있다.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로 평가받는 아이작 뉴튼은 그 명성만큼이나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내가 남들보다 멀리 볼 수 있었던 건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명언은 흔히 오만한 천재의 모습으로 비쳐지는 그도 인류라는 동반자 앞에서는 겸손해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뉴튼 이후 수많은 뛰어난 과학자들이 등장했다. 오늘날 우리는 뉴튼보다 더 많은 과학 지식을 갖고 있다. 뉴튼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뉴튼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 어떤 업적을 이루더라도 그건 함께 길을 걷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고 또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올 한해 한국사회는 세대, 남녀, 이념, 계층 등 갈등에 시달렸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꼽은 이유다. 이 새는 하나의 몸통에 머리가 둘 달린 상상 속의 동물이다. 옆의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죽이고는 자신도 목숨을 잃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새해에는 함께 길을 걷는 이들을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용민 지방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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