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희망이다] 워라밸 시대 직장문화

K-Water 손정희(왼쪽) 대리와 지준영 대리가 최근 직장문화 트렌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빈운용 기자
K-Water 손정희(왼쪽) 대리와 지준영 대리가 최근 직장문화 트렌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빈운용 기자
`김대리 퇴근을 부탁하노라/부장님 걱정은 하지마세요/업무시간 집중하고 당당하게 퇴근하세요/김대리 저녁은 먹고가야지/부장님 가족이 기다립니다/수요일은 가정의날 가족들과 함께하세요(중략)일과 가정 양립해가요`

한국수자원공사(K-water)에서 울려 퍼지는 일명 퇴근송이다. 퇴근시간이 지나면 컴퓨터가 꺼지는 PC오프(off)제도도 도입돼 야근하는 직원들은 찾기 힘들다. 퇴근시간이 빨라지면서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졌다. 어학공부 등 자기계발이나 운동을 하며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부어라 마셔라 하던 저녁 회식문화도 사라졌다. 대신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데 장소와 메뉴는 팀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한다.

과거 개인의 삶보다 일을 우선시하던 사회에서 최근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개인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주52시간 근로제 시행과 함께 Y세대,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20-30대 청년들이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워라밸 등 직장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K-water 지준영(32) 대리와 손정희(27) 대리를 직접 만났다. 2014년, 2016년 입사한 지 대리와 손 대리는 워라밸로 인한 직장문화의 변화를 몸소 느낀다고 했다.

지 대리는 "퇴근 이후 운동과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입사 초기와 비교하면 퇴근이 확실히 빨라졌다"며 "당시 야근이 잦아 퇴근이 늦었고 회식도 종종 있었다. 부서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지금은 저녁 회식자리가 별로 없고, 있어도 대부분 저녁 9시 전에 끝난다. 술잔 돌리기 등 술을 강요하는 문화도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손 대리는 "예전보다 퇴근시간이 앞당겨지면서 요가를 배우고 있다. 친구와 약속을 잡거나 독서 등 자기계발도 하고 있다"며 "송년문화도 변했다. 술보다는 지난 1년을 되돌아보는 영상을 만들어 직원들이 함께 보거나 이탈리안 레스토랑 등 맛집을 찾아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노동시간이 줄면서 직원들의 업무 능률, 만족도가 높아진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손 대리는 "`근무시간 내 잘해야겠다`라고 생각하니 집중도가 올라가는 것도 있다"며 "퇴근 이후 자신만의 생활을 갖게 되면서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가 오르고 열정적으로 임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 대리는 "퇴근하면 일과 개인생활이 분리된다. 만족도가 올라가니 스트레스도 줄고 자연스럽게 업무시간에 열심히 하고 업무 능률이 오른다"면서 "업무 특성 상 새로운 창의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쉬면서 생각이 나기도 한다"고 했다.

이 같은 변화는 기업의 제도,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 K-water는 올해 유연근무제 일환으로 근무시간 선택제, 30분 단위 연차 등 제도를 마련하고 워라밸 등 직원 복지에 힘쓰면서도 몰입해서 일하기 등 캠페인은 물론, 불필요한 일 줄이기 공모를 진행하는 등 근무시간 감소에 따른 업무 성과를 높이기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기성세대가 주도하던 사회활동이 만족과 워라밸을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 세대인 청년 진입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인데 최근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이들이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과 가정 모두 중요하다고 응답(19세 이상)한 사람의 비율이 44.2%로 2011년(34%)보다 10.2%포인트, 2년 전 조사(42.9%)보다 1.3%포인트 올랐다.

반면 일이 우선이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중은 42.1%로 2011년(54.5%)보다 12.4%포인트, 2017년(43.1%)에 비해 1.0%포인트 줄었다.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한 답변이 일이 우선이라는 답변을 앞지른 것이다.

박혜진 대전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 생활하려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청년공간에서 진행되는 생활클래스나 원데이클래스 수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등 여가활동이나 취미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청년참여기구인 대전청년정책네트워크를 통해 의제를 발굴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청년정책은 일자리 중심에서 사회전반으로 다뤄야 하고, 공간 기반을 통해 청년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광희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는 집에 가는 시간을 줄이며 밤샘 노동을 해서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면 젊은 층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며 자기 생활을 갖고 싶어한다"며 "젊은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직장문화도 바뀌는데 기성세대가 맞춰 과거 문화, 노동 강도를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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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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