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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신춘문예] '화물차 알록이' 동화 당선작 및 당선소감

2020-01-01기사 편집 2020-01-01 14:39:38     

대전일보 > 기획 >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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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 알록이] 김정미 作

월요일, 민재는 그림을 그리면서 아빠를 기다렸어요.

"아휴, 이놈의 똥차! 시동이 또 꺼졌네."

아빠가 알록이에서 내리며 웅얼댔어요.

알록이는 칠장이인 아빠가 타는 화물차에요. 페인트가 튀어 알록달록해진 화물차에게 민재가 붙인 이름이에요.

민재와 알록이는 열 살 동갑내기에요. 민재는 해가 다르게 자랐지만 알록이는 날이 갈수록 약해졌어요. 난데없이 시동을 꺼뜨리고 멍하니 있는 날이 많아졌어요.

민재가 알록이를 살폈어요. 새로 생긴 물감방울을 찾으려고요. 눈을 부릅떠보았지만 어떤 방울이 먼저 떨어지고 어떤 게 나중에 생겼는지 아리송했어요.

아빠가 까슬까슬한 턱을 민재 볼에 비볐어요.

"앗, 따가워!"

민재가 아빠를 밀쳤어요.

"아빤 본체만체하기냐?"

"아빠는 아까랑 똑같잖아요. 알록이는 달라졌고요."

"어디가? 내가 보긴 똑같구먼."

민재는 손바닥을 쫙 펴고 알록이를 쓰다듬었어요. 오톨도톨한 물감방울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빗방울모양, 버섯모양, 초승달모양. 서로 생김새가 달랐어요. 하늘색, 귤색, 보라색. 저마다 빛깔도 달랐어요.

아빠가 민재를 재촉했어요.

"그만 들어가자."

민재는 새까매진 손바닥을 바지에 쓱쓱 문지르고 집으로 들어갔어요.

저녁밥을 먹는데 아빠가 밥알이 보이게 함빡 웃었어요.

"번창군에서 짓는 미술관을 아빠가 칠하게 됐다."

민재도 활짝 웃었어요. 번창군에서 일하면 아빠가 집에 일찍 오니까 좋았어요.

아빠가 고개를 절레절레했어요.

"미술관 관장님이 똥차한테 멋진 그림 트럭이라고 하더라.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희한하다니까."

화요일, 민재는 만화책을 보면서 아빠를 기다렸어요.

아빠가 오자마자 라면 물을 올리고 알록이를 흉보았어요.

"알록이가 시동을 꺼뜨려서 하마터면 일을 망칠 뻔했다. 여태 저녁도 못 먹었네."

아빠가 라면 스프를 넣고 말했어요.

"십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법이야. 십년 탔으면 많이 탔지."

민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잠이 확 달아나는 대신 걱정이 들어찼어요. 민재가 새우등을 하고 누웠어요. 민재와 알록이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이였어요.

알록이는 엄마 아빠와 '쑥쑥 산부인과'에 갔다가 아빠와 민재만 태우고 돌아왔어요. 민재가 본 엄마는 알록이의 거울에 걸린 사진 속 엄마가 전부였어요. 민재는 알록이에 탈 때마다 엄마가 앉았던 의자에 몸을 비벼보곤 했어요.

민재가 한밤중에 열이 올라 응급실에 갔을 때에도, 설레는 마음으로'번창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에도 알록이가 데려다주었어요. 방학이 되면 민재는 아빠를 따라다녔어요. 아빠가 일하는 동안 민재는 높은 알록이 허리에 기어오르고 넓은 알록이 등판을 뛰어다녔어요.

아빠는 알록이 등에 천막을 쳐주었어요. 민재가 친구들처럼 캠핑 가고 싶다고 졸랐거든요. 민재는 침낭 속에 엎드려 그림책을 보고 낮잠을 잤어요. 아빠한테 페인트와 붓을 얻어 알록이 옆구리에 그림도 그렸어요.

새우등을 하고 잠든 민재가 알록이 꿈을 꾸었어요. 알록이가 길을 잃고 빗속을 헤맸어요. 알록달록한 무늬가 빗물에 씻겨 내렸어요. 새파래진 알록이가 엉엉 울었어요.

수요일, 아빠가 민재를 깨웠어요.

"학교에 태워줄게. 얼른 준비해."

민재는 알록이 걱정에 아침밥이 안 넘어갔어요. 바삭하고 고소한 시리얼이 우유에 적신 톱밥을 씹는 맛이었어요.

아빠가 민재에게 안전띠를 매주었어요.

"오늘부터 미술관으로 출근하니까 일찍 올 거다."

민재는 알록이의 보조석에 푹 기대어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빠가 민재를 학교에 내려주고 미술관으로 달렸어요. 알록이가 또 시동을 꺼뜨렸어요. 미술관으로 출근한 첫날부터 지각한 아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어요. 마침내 알록이를 팔아치우기로 결심했어요.

아빠는 퇴근길에 '씽씽 중고차'에 들렀어요.

중고차 아저씨가 팔을 내저었어요.

"이런 차는 안사요. 너무 낡았으니 폐차시키세요."

아빠는 '씽씽 중고차'에 알록이를 맡겼어요. 팔팔한 화물차를 한 대 골랐고요. 미술관에서 받은 돈으로 알록이를 폐차하는 값과 새로 산 화물차 값을 치렀어요.

중고차 아저씨가 알록이를 가리켰어요.

"내일 화물차를 갖다 드리면서 저 차를 가져갈게요."

민재는 골목에 나와 공을 굴리면서 아빠를 기다렸어요.

운전석에서 내린 아빠가 대뜸 말했어요.

"알록이 팔았다."

아빠는 차마 폐차시킨다고 할 수 없어 거짓말을 했어요.

민재가 발끝으로 누르고 있던 공이 데굴데굴 굴러갔어요. 목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나오는데 눈에서 눈물이 후두두 떨어졌어요.

아빠가 먼지를 툭툭 털며 말했어요.

"내일 알록이는 가고 다른 차가 올 거야."

민재는 소매로 눈물을 쓱 훔쳤어요. 알록이의 보조석에 올라타 문을 탁 닫았어요. 엄마 사진이 그네처럼 왔다 갔다 했어요.

조금 뒤에 아빠가 차문을 똑똑 두드렸어요. 창문으로 민재가 좋아하는 참치샌드위치를 보여주었어요.

민재는 못 본척했어요. 알록이가 팔려 가는데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는 건 반칙 같았어요.

밤이 되어서도 민재는 알록이와 있겠다고 우겼어요. 내일이면 알록이와 헤어져야 한다니 믿기지 않았어요. 아빠는 감기에 걸린다고 말렸지만 민재는 막무가내였어요.

아빠가 천막과 침낭을 가져왔어요. 알록이 등에 널브러진 페인트 통과 사다리를 치우고 천막을 쳤어요. 천막 속에 침낭 두 개를 펼치고 나란히 누웠어요. 별도 달도 숨어버린 하늘에는 구름만 가득했어요.

아빠가 민재를 달랬어요.

"이제 알록이랑 헤어져야 돼. 먹고 살려면 아빠가 일을 해야지. 아무 때나 시동이 꺼지는 건 굉장히 위험한 거다."

민재가 울먹였어요.

"내가 밥 조금 먹을게. 뭐 사달라고 안 조를게. 알록이 데리고 있자. 응?"

아빠가 한숨을 쉬었어요.

"골목에 화물차 두 대를 세울 순 없어. 알록이는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

민재가 눈물을 글썽였어요.

목요일, 민재와 아빠는 늦잠을 잤어요. 민재는 1교시가 시작되고 학교에 갔어요. 선생님 말이 하나도 안 들렸어요. 급식도 맛이 없어서 짝꿍에게 닭다리를 줘버렸었어요.

아빠는 미술관으로 출근한 둘째 날도 지각을 했어요. 말썽쟁이를 팔아치우면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어쩐 일인지 마음이 어수선했어요.

학교에서 돌아온 민재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골목을 왔다 갔다 했어요.

'씽씽 중고차'아저씨가 팔팔한 화물차를 몰고 왔어요. 뒤따라 아빠가 알록이를 타고 왔어요. 아빠는 알록이의 열쇠를 아저씨에게 건네고 팔팔한 화물차의 열쇠를 받았어요.

민재가 아저씨를 올려다보았어요.

"제가 운전면허 딸 때까지만 아저씨가 맡아주세요. 네?"

아저씨가 웃으며 민재 머리칼을 헝클었어요.

아빠가 알록이의 거울에 걸려있던 엄마 사진을 떼었어요. 그러고는 팔팔한 화물차의 거울에 옮겨 달았어요.

금요일, 일찍 일어난 민재는 학교까지 걸어갔어요. 팔팔한 화물차를 타려니 알록이를 배신하는 것 같았어요. 민재는 수업시간 내내 시동 꺼진 알록이처럼 멍하니 있었어요.

미술관으로 출근한 셋째 날에야 아빠는 늦지 않았어요. 팔팔한 화물차는 시동을 꺼뜨리지 않았거든요.

퇴근 무렵에 관장님이 아빠를 찾았어요.

"개관식(미술관 등이 문을 여는 행사) 때 번창군민들 작품을 전시하기로 했어요. 군에서 짓는 미술관이니까요. 전시제목은 [번창군의 예술가들 - 세월이 만든 작품전]이에요."

아빠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관장님이 이어 말했어요.

"그래서 말인데 그림 트럭을 미술관 마당에 전시하면 좋겠어요."

아빠는 잘못 들은 줄 알았어요.

"똥차, 아니 제 차를 전시한다고요?"

관장님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 차야말로 세월이 만들어낸 작품이잖아요."

아빠가 눈을 끔벅였어요.

"페인트가 묻은 멜빵바지와 사다리, 깡통이랑 붓도 전시할 거니까 개관식에 맞춰 준비 좀 해주세요."

"제 옷이랑 잡동사니를요?"

관장님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빠는 부랴부랴 집으로 갔어요.

"민재야, 나와 봐. 미술관에서 알록이를 전시한대!"

아빠가 시동을 켜둔 채 민재를 불렀어요.

손톱을 물어뜯던 민재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헐레벌떡 밖으로 나갔어요.

"세월이 만든 작품이라나, 뭐라나."

아빠가 허허 웃었어요.

민재는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어요. 너무 좋아도 눈물이 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어요.

민재가 팔팔한 화물차에 올라탔어요. 보조석에 앉아 거울에 매달린 엄마 사진을 보았어요. 사진이 살랑살랑 흔들렸어요.

아빠가 '씽씽 중고차'로 달렸어요. 알록이가 벌써 폐차되었으면 어쩌나 조마조마했어요.

아빠가 중고차 아저씨에게 물었어요.

"알록이 어디 있나요?"

중고차 아저씨가 귀찮은 듯 대꾸했어요.

"칠하러 보냈는데요."

아빠 눈이 똥그래졌어요.

"폐차한다면서요?"

중고차 아저씨가 쩔쩔매면서 둘러댔어요.

"아니, 칠만 해달라는 사람이 있어서……"

알록이한테 칠을 한다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어요. 아빠와 민재는 팔팔한 화물차를 타고 중고차 아저씨가 알려준'바꿔 정비소'로 달렸어요.

아빠가 고릴라처럼 외쳤어요.

"멈춰!"

알록이에게 막 파란물감을 뿌리려던 아저씨가 우뚝 멈추었어요. 머리에서 발끝까지 비닐 옷을 뒤집어써서 우주인 같았어요.

"뭐라고 했어요?"

정비소 아저씨가 마스크를 벗고 물었어요.

민재가 잽싸게 알록이 앞을 가로막았어요. 아빠는 물감 뿌리는 기구를 낚아챘어요. 정비소 아저씨가 물러나며 어깨를 으쓱했어요.

드디어 번창군립미술관이 문을 열었어요. 민재와 아빠는 알록이를 만나러 갔어요. 청포도색 담벼락에 걸린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어요.



번창군의 예술가들 - 세월이 만든 작품전



미술관 마당에 알록이가 늠름하게 서있었어요. 햇살을 받은 알록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알록달록했어요.

사람들로 붐비는 미술관에는 알록이말고도 갖가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하나같이 오래되었지만 살펴보면 아름다운 것들이었어요. 어찌 보면 오래되었기에 아름다워진 작품들이었어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관장님이 다가왔어요.

"그림트럭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우리 미술관은 번창군민들한테 공짜란다."

민재가 헤벌쭉 웃었어요. 관장님의 털털한 말투가 마음에 쏙 들었어요.

아빠는 새삼스레 알록이을 들여다보았어요. 문득 알록달록한 무늬가 나무에 새겨진 나이테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알록이가 알록달록해진 만큼 아빠의 칠 솜씨도 늘었으니까요.

민재가 손바닥을 쫙 펴고 알록이를 쓰다듬었어요. 전시장에서 보는 알록이는 사뭇 달랐어요. 미술관 색을 닮은 청포도색 물감방울 때문인지도 몰랐어요. 민재가 새까매진 손바닥을 바지에 쓱쓱 문질렀어요.



#당선소감

김정미


송년모임에 다녀온 날이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분이 공모전에서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너도 나도 축하하며 좋은 기를 받자고 화가의 손을 맞잡았습니다. 덩달아 악수한 저는 손을 씻지 않겠노라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대전일보에서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응모한 작품 제목을 묻는 질문에 그만 얼떨떨해서 잘 모르겠다고 해버렸습니다. 올해 당선자는 바보로구나 생각해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입에서 주소가 술술 나와 준 것만도 다행이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손을 맞잡았던 화가가 떠올랐습니다. 응모할 작품을 화물차에 실어놓고도 붓을 놓지 못하고 칠을 했다는 화가는, 화물차 기사가 말리고 나서야 붓을 놓았다고 했습니다.

나는 과연 화가만큼 동화를 들여다보고 다듬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는지 자문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화가를 따라잡을 순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꽃길만 걸어오지는 않았기에 스스로의 어깨를 토닥여주기로 했습니다.

서성대던 저는 그제야 의자에 앉았습니다. 입안에서 빙수가 사르르 녹는 느낌과 뜨거운 고구마를 꿀꺽 삼킨 느낌이 동시에 일었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향긋한 차가 온몸에 퍼지듯 나른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기쁨보다는 안도였습니다. 심사위원님들이 동화를 써도 되겠다고 도장을 꽝 찍어준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어린이들한테도 '참 잘했어요.'도장을 받는 작가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소중한 가족들, 존경하는 선생님들, 나보다 더 기뻐한 글벗들, 응원해준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특히, 존재만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딸에게 사랑을 보냅니다.

무엇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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