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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포럼] 별에서 온 그대의 질문

2020-01-14기사 편집 2020-01-14 08: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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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별에서 온 그대는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에 미확인비행물체를 목격했다는 기록 하나에 상상력을 더해 탄생시킨 공상 과학 SF로맨스 드라마이다. 큰 인기로 인해 중국에 수출된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덕을 본 것은 주연 여배우 전지현이 사용한 립스틱을 제조한 화장품 회사였다. 그 회사는 중국의 SNS 드라마 후기 빅데이터를 분석, 여배우가 사용한 립스틱 판매가 매우 증가할 것으로 예측해 다른 품목을 줄이고 해당 제품 생산을 대폭 늘렸다. 결과는 예상대로였고 이는 빅데이터 분석에 근거한 유연 제조 혁신 트렌드의 사례가 되었다.

그런데 화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별에서 온 그대이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화학원소는 모두 별의 활동을 통해 지구로 왔기 때문이다. 인류는 아주 최근 허블우주망원경에 의한 우주배경복사의 관측으로 138억 년 전 우주의 탄생 빅뱅이 있었음을 알아냈다. 그리고 빅뱅 3분 이내에 쿼크,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이 만들어졌고 38만 년이 지나서 수소와 헬륨이 생성됐다. 빅뱅 수억 년 후 탄생한 별 내부에서 수소와 헬륨의 융합이 일어나 탄소, 산소 등을 거쳐 철까지 원소들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더 이상의 핵융합은 중단되고 일부가 폭발하여 초신성이 된다. 이 과정의 뜨거운 온도에 의해 철 이상의 무거운 화학원소들이 탄생하게 되고 이 모든 우주의 원소들이 46억 년 전 탄생한 지구에 착륙하게 된 것이다.

생명의 탄생과 유지는 몸을 구성하는 탄소, 산소, 수소, 질소 등의 화학원소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화학물질의 역할 때문이다. 이 화학물질은 생명이 끝나면 다시 애초의 화학원소로 돌아가게 된다. 핵융합이 일어나는 뜨거운 조건이 없이는 화학원소 자체는 결코 없어지거나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죽어 이름도 남기지만 사용하던 화학원소를 남기는 것이다. 세종대왕의 몸속에 있던 화학원소가 누군가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겸손하게 잘 살아내어서 죽은 후 몸속의 원소를 누군가에게 잘 넘겨줘야 할 일이다.

사람만이 아니고 모든 생명체와 세상 만물은 화학원소로 만들어져 있다. 사실 화학을 모르던 시절 세상 만물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을까 하는 것은 인간의 철학적 질문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가 만물은 물, 불, 공기, 흙의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물, 불, 공기, 흙이 건, 습, 온, 냉 성질과 배합되어 만물이 형성된다고 주장함으로써 형성된 4원소 설은 이후 2000년간 인류가 진실로 믿는 가설이 됐다. 많은 과학자조차 물, 불, 흙, 공기를 적절한 비율로 혼합해 금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고 세기의 천재 과학자 뉴턴도 말년을 연금술에 빠졌을 정도로 4원소 설은 강력했다.

그러나 연금술은 다양한 화학실험 방법을 발전시켰으며 프랑스의 라부아지에는 이러한 화학실험과 관찰로 공기, 물이 하나의 원소가 아니고 여러 원소로 구성된 혼합물임을 밝히고 이후 30여 개의 원소를 찾아냄으로써 4원소 설을 근본적으로 해체했다. 그리고 질량보존의 법칙을 발견해 당시 100여 년간 화학의 강력한 패러다임이던 플로지스톤설도 폐기했다. 그는 근대화학의 시작을 알린 천재 화학자였다. 그러나 이 천재 화학자는 직업이 세금징수원이었고 가난한 백성의 세금을 걷어야 하는 악역이었다. 프랑스 시민혁명 당시 라부아지에는 이 때문에 재판에 넘겨졌고 과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담당 판사는 프랑스는 과학이 필요하지 않다며 사형을 판결했다. 당시 판사가 4원소 설과 플로지스톤 이론에 의문을 품고 무수한 실험과 관찰로 성취해낸 라부아지에의 연구업적이 인류의 문명과 철학적 관점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성과라는 것을 알았다면 판결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인류 문명은 세상 만물의 근원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답을 구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4원소 설에서 주기율표의 118개 원소로의 진화는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류는 만물에 대한 이해를 넘어 원소의 조합으로 만든 세상 만물이 초래하는 환경 파괴와 기후변화, 신종질병과 전쟁 등으로 인해 생존 지속성의 질문에 답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 세상 만물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실험과 관찰로 찾아보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투쟁, 정치 사회 지도자들의 과학에 대한 이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어떻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연결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 몸에 들락날락하며 지구와 인류 문명을 지켜보는 별에서 온 그대, 원소들의 질문이 아닐까….

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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