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225호인 창덕궁 인정전에는 `일월오악도`라는 병풍이 있다. 병풍 속 해와 달은 음양과 더불어 왕과 왕비를 상징한다. 해와 달 아래 우리나라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산을 가리키는 다섯 개 산봉우리가 있다. 임금이 중앙에서 사방을 다스리고 음양의 이치에 따라 전 국토에 걸쳐 정치를 펼친다는 뜻이 병풍에 담겨 있다.

국보 제237호인 `고산구곡시화도 병풍`을 보자. 세로 1.38m, 가로 5.62m 크기의 12폭 병풍은 대학자 이이가 은거하던 황해도 고산의 아홉 경치를 1803년 7월과 9월에 걸쳐 김홍도 등 당대 이름난 궁중 화가 및 문인 화가들이 그림으로 옮겼다. 여기에 문신들이 시를 적은 것을 모아 표구했다. 병풍에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와 남종화풍을 기반으로 형성된 작가들의 특색과 기량이 잘 나타나 있다. 예술적 가치 뿐만 아니라 이이, 송시열계 기호학파 학자들의 인적 계보와 성향을 연구하는 데도 좋은 자료가 된다.

병풍(屛風)의 한자말을 풀이해보면 바람을 가릴 때 사용하는 물건이다. 접거나 펼 수 있어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했다. 병풍은 그림 등으로 표현된 주제에 따라 장생병, 신선도병풍, 화조병풍, 도장병풍 등 종류도 다양하다.

병풍의 쓰임새는 현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28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김정숙 여사와 시티 하스마 말레이시아 총리 부인과 환담장에는 십장생도 병풍이 배경으로 등장했다. 총리 부인의 장수를 바라는 의미였다.

세간에 `병풍서다`는 말이 있다. 예를 들면 면접장에서 한마디 질문도 받지 못해 결국 합격자 들러리가 됐을 때 자조 섞인 한탄으로 쓰인다. 여럿이 출연하는 무대에 존재감 없이 서 있는 연예인을 가리키기도 한다.

선거철이면 정치권에도 인간병풍이 등장한다. 후보자 기자회견장에 병풍처럼 도열한 사람들. 개중에는 자발적 지지자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인간병풍 된 이들도 있다. 특히 시도의원들은 국회의원이나 단체장 후보자의 단골 병풍이다. 당선되면 공천권을 쥐락펴락 할 수 있으니 지지여부와 상관없이 인간병풍 노릇을 감수해야 한다. 주군을 정점으로 한 위계에 의한 수직적 굴종관계가 건전한 지방자치를 좀먹는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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