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 우리나라 같은 보험제도를 가진 나라는 없을 겁니다. `무한보험`만 들어두면 내가 운전을 하다가 사람 하나 반신불수로 만들어도 책임을 모두 피할 수 있어요. 이게 말이나 됩니까."

대전의 한 보험업계 인사 A씨는 현 보험제도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답답함이 가득 묻어있었다. 보험사가 감당해야 하는 손해율만을 생각하며 이런 발언을 한 것을 아닐 것이다. 보호장비를 과신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칼날을 휘두르는 데 조심성이 결여되기 마련이다. 보험사가 밑도 끝도 없이 보장해주는 고객들의 권익은 오히려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밑바탕이 될 수도 있다. A씨의 말에는 이 같은 걱정이 들어있었다. 무한보험은 그냥 방패도 아니고 `무적의 방패`이니 말이다.

무한보험이란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교통사고를 냈을 경우 보험회사가 피해자에 대해 일정한 한도 없이 배상책임액 전부를 지급해주는 제도다. 신호위반, 끼어들기, 무면허운전 등 교통사고 10대중과실을 제외하곤 무엇을 해도 보험회사가 담보를 해준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음주운전으로, 현행법상 음주운전 사고 가해자가 대인배상 300만 원, 대물배상 100만 원 등 최대 400만 원만 지불하면 모든 책임을 피할 수 있다.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최근 금융위는 올해 업무 계획으로 음주운전 사고 발생 시 가해운전자의 자기부담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인상률도 정해지지 않았고 실제 법으로 제정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현행법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올해 주요 업무 과제로 삼은 것은 긍정적인 신호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음주운전은 시민들의 인식이 가장 중요하다. `설마`하는 생각으로 잡은 운전대가 얼마나 큰 사고로 이어지고, 누군가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길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자제를 해야 하는 부분이다. 시민의식을 `돈`이라는 강제성이 부여된 수단으로 제어해야 한단 사실은 씁쓸하게도 느껴진다. 내가 져야 하는 책임과, 내가 앗아갈 수 있는 누군가의 인생은 결코 400만 원짜리가 아니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이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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