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그리워졌다 (김용희 지음/ 인물과사상사 / 284쪽/ 1만 4500원)

밥이그리워졌다
밥이그리워졌다
TV 화면에 수많은 `먹방`이 넘쳐난다. 현대인들은 아무리 먹고 먹어도 영혼의 허기에 허덕인다.

음식은 단순히 물질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다. 더할 수 없는 쾌락으로 우리의 혀끝에 맴돌다 목구멍 너머로 사라지고 나면 지독한 허전함만 남기는 음식들.

음식은 신의 공여(供與)다. 어떤 생명체의 죽음이 깃들어 있다. 나의 생명이 누군가의 생명에 빚진 대가라고 생각하면 음식 앞에서 장엄한 슬픔을 느낀다. 먹고 산다는 것이 참 신산스럽기만 하고 성스럽기만 하다. 저자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으면 지금까지 먹은 음식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당신의 인생이라고.

이 책은 단순히 음식에 관한 산문이 아니다. 음식을 통해 삶에 대해, 인간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음식에 깃든 추억과 인생 이야기는 감각적이고 감동적이다.

이 책은 우리 인생에서 `기억할 만한 음식` 50가지를 부려놓는다. 칼국수, 삼겹살, 닭백숙, 양푼비빔밥, 떡볶이, 김치찌개, 라면, 냉면, 짜장면, 설렁탕, 돈가스, 콩국수 등 저자는 인생 날것의 맛을 보여주겠다고 자신한다.

누군가 음식을 취하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입맛, 하나는 마음.

저자는 음식들에게서 인생의 추억을 소환한다. 인생을 입안으로 집어넣고 혀로 굴리며 그 맛을 음미해본다.

칼국수에서 엄마의 칼의 사랑이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칼국수를 만들 때 엄마는 세상의 헐벗음 속에서 자식새끼들을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 칼을 든 무사였다. 엄마의 칼국수는 세상에서 저자를 지킨 음식이다. 칼국수 한 가락 한 가락 썰어나가는 마디마다 칼날의 섬세함과 우직함이 담겨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칼국수는 제비 새끼처럼 나약한 아이들에게 내장이 되고 심장이 된다고.

맛이란 건 참 오묘하다. 음악처럼 음식이란 `그 때`의 장면, `그 때`의 생각을 단숨에 부른다.

누군가에 대한 맛은 비단 음식으로만 저장되지 않는다. 저자에게는 아버지가 만들어준 음식이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추억의 맛도 없었다. 다만 딸의 결혼식 때 보인 눈물인지 땀인지를 닦던 젖은 손수건 정도. 첫 애 나으러 친정에 갔을 때 희미하게 웃으시던 모습 정도. 산업화 1세대, 척박하고 굶주렸던 1960-1970년대, 오직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만이 최고의 가치였던 우리 시대의 아버지. 어쩌면 그런 것 같다. 꿋꿋한 영혼처럼 가족을 위해 걸어온 땀범벅의 소금 기둥. 저자는 "그 짠맛이 아버지를 기억하게 하는 맛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편의점 창가에서 먹는 참치마요김밥은 나의 안부를 되새기고, 파이팅을 외치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유년의 모든 기억이자 행복의 절정인 짜장면은 모든 맛을 무력화할 만한 맛의 쾌락이라고도 전한다. 저자는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 그 음식들이 함께 곁에 있어 주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함께 웃고 울어 주었다고 말한다.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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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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