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형 씨. 사진=대전시 제공
조진형 씨. 사진=대전시 제공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온 유물이니 나 다음엔 아들이 관리해 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하나뿐인 아들이 그렇게 될 줄 꿈에라도 알았겠습니까."

역사적 가치를 지닌 개인소장유물 148점을 대전시립박물관에 선뜻 내놓은 조진형(71) 씨는 숨겨진 기증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조 씨는 "다 키워놓은 아들이 20년 전 스무 살 나이에 갑자기 백혈병을 앓다 하늘나라로 갔다"며 "이후 내가 나이를 먹듯 집안에서 소중하게 보존해온 유물이 흐르는 세월과 함께 훼손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박물관 기증을 결정했다"고 했다.

조 씨의 선대는 함경도 북청(北靑)에서 살다 조선후기 진잠으로 내려와 세거한 한양조씨 집안이다. 기증된 유물에는 북청지방 관련 자료들이 다수 포함돼 있고 당시 사족(士族)의 존재와 시대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사족은 조선후기 향촌사회에서 자치규약인 향약과 향규를 통해 지배권을 확립한 지방권력층이었다.

또 함흥 문회서원(文會書院)과 더불어 함경도내 대표적인 서원이던 노덕서원(老德書院) 망기(望記)도 있다. 망기는 직책에 적합한 인물을 천거할 때 사용한 문서로 함경도 지역 대표서원을 이해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다. 1736년(영조 12년) 북청부사(北靑府使)가 발급한 차첩(差帖)부터 1867년(고종 4년)까지 차첩은 시대별 문서 양식 변천 과정과 역사를 보여준다. 차첩은 조선시대 관아의 장이 녹봉을 받지 못하는 무록직(無祿職) 속관을 임명하면서 발급하는 문서다.

이와 함께 북청부(北靑府)에서 발급한 호구단자를 비롯해 민화(民畵)나 문자도(文字圖) 밑그림은 매우 희귀하고 조선시대 사대부가 가족관계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역사자료로 박물관 측은 판단하고 있다. 시립박물관 관계자는 "기증유물실에 별도 공간을 마련해 기증받은 유물을 잘 보존하고 자료의 중요성을 감안해 향후 전시·연구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며 "개인소장유물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일반에 공개함으로써 시민들의 소장자료 기증 활성화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조 씨는 "내가 기증한 집안의 소중한 유물이 박물관에서 체계적으로 잘 보존되고 후세에 도움이 되는 자료로 남길 바랄뿐 다른 욕심은 없다"고 말했다. 시립박물관은 지난 2월 조 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문승현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