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대전 서구 정림동 코스모스아파트에서 소방 관계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31일 오전 대전 서구 정림동 코스모스아파트에서 소방 관계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그냥 정신 없이 몸만 나왔던 거죠. 아파트가 물에 잠길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냐고요." 31일 오전 8시쯤 대전 서구 정림동 코스모스아파트 한 입주민 A 씨는 43㎡(13평) 남짓한 집안에서 신발을 신은 채 방바닥에 쌓인 진흙더미를 걷어내고 있었다. 빗물에 잠겼던 방 두 칸과 주방, 화장실 등 구석구석에 깨끗한 물을 뿌리고 어디서 떠내려 온 지 모를 나무판자를 쓰레받기 삼아 밖으로 빼냈다. A 씨는 "20년 넘게 여기서 살다 이런 경우는 처음 당한다"며 "어젯밤 임시대피소에서 머물다 새벽에 나왔다"고 황망해했다.

5층짜리 이 아파트 2층에 살고 있다는 다른 주민 B 씨는 오랫동안 인연을 맺고 살아온 1층 주민을 대신해 집을 지키고 있었다. 비 피해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상을 당했다는 이웃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B 씨는 "1층 사는 사람들의 가족 중 한 명이 오늘 새벽 갑자기 돌아가셔서 침수된 집을 돌볼 틈도 없이 장례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침대와 이불 등 물이 찼던 살림살이들은 다 버려야 할 텐데 걱정"이라고 한숨 쉬었다.

거대한 물웅덩이로 변했던 아파트 주차장은 물이 빠져 나가면서 뻘밭으로 변했다. 물에 휩쓸려온 진흙이 지상 위를 뒤덮어 한발짝 내딛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파트 출입문과 벽면, 주차된 차량에는 전날 차올랐던 수위를 증명이라도 하듯 토사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주민과 자원봉사자, 군부대 등 긴급투입된 인력들은 진흙을 구석으로 몰아 길을 냈고 그 사이로 견인차량이 쉴새 없이 드나들며 침수차량을 떠서 나갔다.

기습 폭우는 5개 동 265가구, 437명이 살고 있는 코스모스아파트에서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은 D동과 E동을 집어삼켰다. 서구 관계자는 "하천홍수위보다 낮은 저지대에 아파트가 있다 보니 인근 갑천 수위가 상승하면 배수불능에 빠질 수 있고 국지성 집중호우로 계획된 우·배수시설 처리용량이 초과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30일 오전 4시쯤 호우경보가 발령됐고 이때부터 한 시간 동안 내린 강우량 즉 시우량이 최대 46㎜에 달했다"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대전시가 이날 오전 5시 기준으로 비 피해를 집계한 결과 코스모스아파트 50대 남성 1명이 숨졌고 동구지역에서는 통행제한 중이던 판암동 소정지하차도를 도보로 이동하던 70대 남성이 사망했다. 또 코스모스아파트 2개동 1층 28가구가 침수됐고 차량 50대가 물에 잠겼다. 이재민 25가구 41명은 임시생활시설인 오량실내테니스장(12가구 17명), 장태산휴양림(5가구 11명), 침산동 청소년수련원(8가구 13명)에서 분산 수용하고 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이날 오전 오량실내테니스장과 코스모스아파트, 정림우성아파트 등을 찾아 주민들을 위로했다. 정림동은 박 의장이 16대부터 내리 6선을 한 지역구다. 박 의장은 허태정 대전시장과 장종태 서구청장으로부터 피해 상황을 보고받은 뒤 "제가 이 근처에서 21년을 살았는데 이런 일은 없었다"며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대한 신속한 복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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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물웅덩이에서 뻘밭으로 변한 대전 정림동 코스모스아파트 주차장. 사진=문승현 기자
31일 물웅덩이에서 뻘밭으로 변한 대전 정림동 코스모스아파트 주차장. 사진=문승현 기자
31일 자원봉사자들이 코스모스아파트 주차장에 쌓인 진흙더미를 치우고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31일 자원봉사자들이 코스모스아파트 주차장에 쌓인 진흙더미를 치우고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31일 대전 코스모스아파트 현관 출입문에 차 올랐던 물 수위를 짐작해 볼 수 있는 토사 선이 선명하다. 사진=문승현 기자
31일 대전 코스모스아파트 현관 출입문에 차 올랐던 물 수위를 짐작해 볼 수 있는 토사 선이 선명하다. 사진=문승현 기자
31일 자원봉사자들이 코스모스아파트 한 가구에서 복구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31일 자원봉사자들이 코스모스아파트 한 가구에서 복구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31일 긴급동원된 군부대 인력들이 코스모스아파트 주차장 진흙더미를 걷어내고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31일 긴급동원된 군부대 인력들이 코스모스아파트 주차장 진흙더미를 걷어내고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31일 코스모스아파트 주차장에 오토바이 한대가 쓰러져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31일 코스모스아파트 주차장에 오토바이 한대가 쓰러져 있다. 사진=문승현 기자
박병석(오른쪽 두번째) 국회의장이 31일 대전 코스모스아파트 이재민이 수용된 오량실내테니스장을 찾아 호우피해 브리핑을 듣고 있다. 사진=대전시 제공
박병석(오른쪽 두번째) 국회의장이 31일 대전 코스모스아파트 이재민이 수용된 오량실내테니스장을 찾아 호우피해 브리핑을 듣고 있다. 사진=대전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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