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대전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김대경 대전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지난 달 박원순 서울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무엇이 박 시장을 죽음으로 몰아갔건 간에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으리라. 안타까운 일이다. 그 전날 전직 여비서가 경찰에 `Me, too` 고발 건을 접수했다. 피해자 측 발표에 의하면 무려 4년 동안 수치심을 느낄 정도의 성희롱이 반복적으로 있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가해자가 성희롱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 이면에는 성적 욕구가 자리해 있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본인의 성욕을 사회적으로 허용 가능한 수준으로 완화해 표출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수치스럽게 느낄 수 있다. 특히 사회적 지위의 상하관계가 흔히 말하는 갑을 관계일 경우 수치심이 더욱 커지게 된다.

성욕은 무척 강렬한 욕구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성욕이 높은 개체는 낮은 개체에 비해 많은 성교 시도를 했을 것이고, 높은 성욕을 특징짓는 유전자를 후대에 전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성욕이 낮은 유전자는 자연 도태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우리가 높은 성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해서 모든 인류의 성욕이 어느 순간 싹 사라진다면, 몇 세대 가지 않아 지구상 생명체 중 한 종으로서 인류는 멸종할 것이다.

흔히들 식욕, 성욕, 수면욕을 생존을 위한 3대 욕구라 한다. 식욕 또한 굉장히 강한 욕구이다. 다이어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이 세 가지 욕구 중 가장 강한 것은 무엇일까? 세 가지 욕구가 모두 결핍된 실험 상황을 만들면 수면욕이 가장 강해지고, 그것이 충족되기 전까지 나머지 욕구는 뒷전으로 밀린다고 한다. 반면, 기본적인 수면욕, 식욕, 성욕이 결핍 상황을 벗어나면, 그 이후로는 성욕이 가장 커지게 된다. 이것은 개체 생존에 필요한 조건이 우선 확보된 후에 자손의 번식을 생각하는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수치심은 생존을 위한 욕구는 아니다. 하지만 이성을 가진 사람이기에 느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감정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그 수치심이 기꺼이 생명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커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 잠시 생각을 멈추고, 일시적인 충동에 의한 잘못된 선택 인지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생명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고, 한 번 생명을 포기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욕구로 각종 재화가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재화, 그 중에서도 특히 돈은 생존을 넘어서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적 바탕이 된다. 하지만 돈이 아무리 절실하게 필요하다해도 생명 보다 소중할 수는 없다.

`돈보다 생명을` - 필자의 병원 노동조합 사무실 앞에 걸려 있는 표어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 노조의 대표 구호이기도 하다. 좋은 말이고 전적으로 동의한다. 돈을 위해 생명을 포기하거나 등한시 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여기서 잠깐, 이 표어에서 의미하는 생명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자. 노조 표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본적으로는 노동자 생존권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더해 보건의료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노조이기에, 그 의미를 확장해 환자들의 건강과 생명권도 포함하고 있다고 받아들이고 싶다.

바라건대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구호를 생각하면서, 쟁의 과정 중에 `돈` 문제로 해서 자칫 환자들의 건강과 생명권이 침해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생명은, `돈` 보다는 물론이고 생명 아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니까. 김대경 대전을지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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