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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궁예(弓裔)를 위하여

2020-08-10기사 편집 2020-08-10 0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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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지병목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역사에서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는 경우가 많다. '(후)고(구)려'를 세웠다는 궁예 또한 그런 인물이다. 그는 신라 말기의 혼란한 상황에서 왕족의 일원으로 태어났으나 주류에서 배제됐고, 어려운 성장 과정을 거쳐 자기 세력을 구축했다. 처음 세력 확장 과정에서는 병사들과 동고동락 하며, 공평무사한 일처리로 인간미를 보였으나 세력이 커지면서 초심을 잃었다고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한다.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운 왕건 세력에게 궁예는 천하의 나쁜 인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궁예는 부인을 처참하게 죽이고, 자식과 주변 인물을 수시로 살해한 폭군으로 역사서에 적혀 있다. 진실이 어떠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역사적 인물이 성공한 혁명의 주체였는지, 아니면 실패한 쿠테타(coup d'Etat)의 주동 세력이었는지에 따라 그들에 대한 역사 기록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실례를 또 하나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철원(鐵原)에 가면 궁예에 대한 많은 흔적들을 느낄 수 있다. 철원은 우리에게 남과 북의 접경지역이라는 이미지로 먼저 다가온다. 군 주둔지, 비무장지대(DMZ) 등이 떠오른다. 궁예는 처음 송악(지금의 개성)에 도읍했다가 얼마 후(905년) 철원으로 옮겨왔고, 그 후 나라이름도 '태봉(泰封)'으로 바꿨다. 그가 후삼국의 분열을 통합하려는 뚜렷한 철학이나 역사의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버림받았다는 개인적 복수심이 더 강했는지도 모른다. 918년 왕건 세력에게 쫓겨날 때까지 철원은 십 수 년 동안 그의 근거지였다. 고구려 옛 땅을 회복하고, 신라를 멸도(滅都)라 부르며 국토를 통합하려했던 궁예의 꿈이 서린 곳이다. 야트막한 철원 소이산(362m)에 오르면 광활한 평야가 눈에 들어온다. 그 옛날 교과서에서 들었던 중부지방의 곡창지대 철원 평야다. 궁예가 왜 이곳을 근거지로 정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6·25 전쟁 직전까지 이곳 소이산 주변은 교통의 요지이며, 수 만 호의 민가가 있었던 철원의 중심 번화가였다고 한다. 멀리 폐허가 된 노동당사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전쟁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사람은 물론 산천마저도.

저 멀리 북쪽으로 아득하니 수풀이 더 무성하게 우거진 곳이 보인다. DMZ다. 그 한가운데 궁예의 흔적이 남아있다. '태봉국 철원성', 이른바 '궁예도성(弓裔都城)'이다. 장방형의 도성은 외성과 그 안쪽 내성, 그리고 궁성으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외성의 둘레는 약 12.5㎞라고 하니 고대 도성 중에서도 큰 편에 속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비무장지대는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약 2㎞씩, 총 4㎞ 정도의 폭으로 설정돼 있다. 그런데 도성은 남북 길이가 약 4㎞라고 하니 비무장지대의 폭과 거의 일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남과 북에 (공평하게) 거의 절반씩 나뉘어져 있다. 지난 70년 동안 누구도 그 정확한 모습을 확인한 적이 없다. 역사 기록에서도 도성이 꽤나 화려했다는 기록이 있고, 분단 이전에 찍은 사진이나 기록, 항공사진 등을 통해 어렴풋한 상황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 도성에 대한 조사는 오래전부터 남북관계가 호전 기미를 보일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는 대상이다. 남과 북에 절반씩 걸쳐 있고, 그것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에 오롯이 위치하고 있으니 조사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지뢰제거, 남과 북의 긴장완화에 대한 확고한 입장뿐 아니라, 국제적 이해의 토대가 마련돼야 하는 복잡한 방정식이다. 오늘도 멀리서 수풀 우거진 그 안에 감추어진 옛 자취를 어렴풋이 바라볼 뿐이다. 개성 만월대에서 남과 북의 연구자들이 함께 조사했던 그 모습이 언제 철원에서 재현될 것인지. 통일을 바라며, 그 시금석이 될 태봉국 철원성(궁예도성)의 온전한 모습이 우리에게 드러나는 날, 궁예를 위하여 한 잔 술이라도 올릴 수 있기를. 지병목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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