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에 수록된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 전문이다. 시집은 1996년 세상에 나왔다. 24년 세월이 흘러 요즘은 한 권에 삼천 원 시집도, 한 그릇 삼천 원인 국밥도 자취를 감췄다. 시집 가격이 오른 만큼 시인의 살림살이는 나아졌을까? 문학인 10명 중 4명의 한 해 수입이 1000만 원 미만이라는 조사결과가 눈에 띈다.

요즘 출판계 안팎은 책값, 더 정확하게는 `도서정가제`를 둘러싸고 흉흉하다. 엊그제는 전국의 동네책방들이 도서정가제 개악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국의 동네책방들은 성명에서 "책은 후대에 전승될 문화공공재이므로 `저렴한` 가격이 아닌, `적정한` 가격에 공급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수준 높은 독서문화와 건강한 출판생태계를 위해선 대형서점과 동네책방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며 완전도서정가제 실행을 촉구했다.

출판계에 따르면 할인 비율을 한정한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뒤 성과는 적지 않다. 연도별 도서 정가 상승의 둔화로 소비자 부담은 완화되고 전국의 독립서점 수는 2015년 97곳에서 2019년 551곳으로 증가했다. 천안만 해도 비슷한 시기 여러 독립서점들이 새로 둥지를 틀었다. 1인 출판 등 개성으로 무장한 독립출판사들의 출현 속에 신간 발행종수도 늘었다.

동네책방들은 도서정가제가 흔들리면 소규모 출판사와 더불어 직격탄을 맞고 일부 대형서점과 온라인 채널의 시장 장악력은 더욱 심화돼 출판생태계 황폐화가 필연적이라고 우려한다.

분명한 것은, 누군가의 수고를 강탈한 할인은 횡포이다. 횡포의 제도화는 폭력이다. 도서정가제는 정해진 책값(圖書定價)에 앞서 바른 책값(圖書正價)이어야 한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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