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는 벗과 교유하면서 주례는 강학과 시와 자연을 벗하며 예의범절로 절제하고 풍류로 승화하며 중용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문방에도 을사늑약은 국권 상실을 불러왔고 해방에 이어 전쟁의 폐허로 조국 근대화의 과업 앞에 경제적 혁신은 과학적 사고를 불러왔다. 젊은 신지식인들은 선비의 교만과 독선이 나라를 망쳤다고 생각했다. 전통을 버리는 것이 신 지식인이라 판단하고. 의식개혁과 혁신의 깃발 아래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의 처절한 도전의 역사는 기적을 이룩했다. 그러나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는 실리주의는 유학의 최고가치인 명분은 핑계로 지조인 의리는 깡패 용어로 기개를 뜻하는 사기는 군대용어가 되었다. 청빈은 구시대 덕목이 되고 동기나 과정보다 결과가 판을 치고 배금주의 사상의 팽배, 인륜의 붕괴 예의범절의 단절, 범죄의 양극화, 인본의 가치상실 시대가 오고 말았다. 선비는 정신문화의 현대화와 전통문화의 대중화, 선비정신의 행동화를 하지못한 과오를 범했다. 뿌리깊은 원죄의식을 처절하게 반성하고 다음세대를 준비 할 도덕성 회복운동에 불을 지필 시점이 바로지금이다. 취호당 최재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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