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환 농협 구미교육원 교수
허성환 농협 구미교육원 교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미흡한 사람이라도 머리에 관을 씌우고 자리에 앉히면 능력을 발휘한다는 말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보면 돈키호테의 시종이었던 산초판사는 미천하고 가난한 농부 출신으로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다 한 귀족 부부의 놀림을 받게 된다. 이 귀족 부부는 산초판사를 한 섬의 총독으로 임명하는데 산초는 예상과 달리 자신의 출신과 능력을 능가하는 실력을 발휘한다. 모르긴 해도 오랜 시간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며 쌓인 지혜가 빛을 발한 게 아닌가 싶다.

반면 최근 한 지인을 통해서 높은 자리에 있으면 안되는 사람이 자리에 올라 주변 사람들 모두가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리더가 리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부서 업무를 보던 사람들끼리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도 서로의 책임이 아니라 지시를 내린 사람 때문에 일이 꼬였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누군가는 반드시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 그러니 서로 언성이 높아졌을 것이다.

덕미위존(德微位尊)이란 말이 있다. 능력이 안 되면 높은 자리는 사양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높은 자리에 올라 가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높은 자리에 주어졌을 때 나는 이 자리에 있을 만한가, 나의 도덕성과 능력에 문제는 없는가. 주변의 평판은 어떤가를 한 번쯤 고민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자리를 사양하거나 떠나야 한다.

물론 욕심을 버리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능력도, 인격도 되지 않는 사람이 자리에 욕심을 낸다면 비록 당장 그 자리에 앉을 수는 있지만 그 끝이 안 좋은 경우가 많다.

주역에 보면 자신의 인격과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높은 자리와 욕심을 자제하라는 말이 있다. 인격은 미천한데 맡은 자리는 존귀하고, 지혜는 작은데 도모하는 욕심이 너무 크다면 재앙을 입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인격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높은 자리와 큰 욕심을 바란다면 결국 큰 화를 입게 된다는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글이다.

주나라 태공이 말하기를 해와 달이 비록 밝지만 엎어놓은 단지 밑은 비추지 못하듯이 칼날이 비록 날카롭지만 죄 없는 사람은 베지 못하며, 나쁜 재앙과 횡액은 조심하는 집 문에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인생을 살면서 화를 당하는 경우는 대부분은 자신의 그릇과 분수를 모르고 탐욕을 부리기 때문이다. 비록 높은 지위가 내 눈앞에 있다 하더라도 내가 가진 인격과 능력을 먼저 돌아보고 그 자리에 앉아야 된다. 욕심을 부리기보다 내가 가진 지혜와 능력을 돌아보아야 한다. 부족하다면 조용히 때를 기다려며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하고 충분히 실력을 쌓았다면 말하지 않아도 나를 알아보는 이가 있다. 그리하면 나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 반드시 온다.

요즘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들 때문에 국민들이 괴롭다. 조직에 손상이 가고 개인의 체면도 구기고 있다. 자리는 능력뿐만 아니라 인격과 능력, 도덕성이 함께 검증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우리 모두는 자신에게 맞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 허성환 농협 구미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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