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은 참 재미있는 속담이다. 우리는 이 말이 우리 민족 경험지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속담은 영국, 독일에도 있다. 모르긴 해도 아마존 밀림 지역에 거주하는 부족이나 안데스산맥 혹은 오스트리아 원주민들에게도 같은 의미를 갖는 속담이 있을 것이다. 대홍수 신화가 어느 문명권에서 발견되듯이 말이다.
문헌상 `시작이 반`이란 말은 헤시오도스가 쓴 `일과 날`에서 처음 발견된다. 그는 우리가 아는 그리스 신들의 계보를 정리·창작한 인물이며 호메로스와의 시 경연에서 이긴 바도 있는 당대의 천재 시인이다. 플라톤은 `시작은 반 이상이다`라고 말하면서 시작의 중요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인물과 다른 맥락에서 시작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의 강조점은 `잘못된 시작`에 있다. 그는 기원전 480년대 중반의 과두정치 체제에서 관직에 있던 두 청년 사이의 벌어지는 동성애-양성애 복합사건의 원한 감정에 의해 촉발된 정변`을 사례로 들며 잘못된 시작이 비참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연초의 중대결심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은 헤시오도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아마도 소포클레스일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일이든 시작을 잘하는 사람은 그 끝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해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그는 `끝`에 방점을 두기 때문에 박수받아야 한다. 역시 문제는 `잘`이다. 용두사미는 `잘`의 요건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란 걸 소포클레스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하준 한남대학교 탈메이지교양교육대학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