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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춘추] '시작이 반'이라는 미덕

2021-01-13기사 편집 2021-01-13 07: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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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이하준 한남대학교 탈메이지교양교육대학 교수

연초에 우리는 습관적으로 무엇인가를 '시작'하려 한다. 이 '시작'은 바람, 희망과 같은 소극적 의미와 의지, 결심, 목표라는 적극적 의미를 함축한다. '올해는 반드시 금연을 할 거야',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한 해를 만들 거야', '꼭 여행을 갈 거야'와 같은 것이 가장 흔하게 접하는 새해 결심이다. 동료나 지인들로부터 위와 같은 연초 결심을 들으면 누구나 으레 '시작이 반이야, 잘 될 거야'라고 덕담을 한다. 빈말이든 진심이 담긴 말아 든 모두 '시작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은 참 재미있는 속담이다. 우리는 이 말이 우리 민족 경험지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속담은 영국, 독일에도 있다. 모르긴 해도 아마존 밀림 지역에 거주하는 부족이나 안데스산맥 혹은 오스트리아 원주민들에게도 같은 의미를 갖는 속담이 있을 것이다. 대홍수 신화가 어느 문명권에서 발견되듯이 말이다.

문헌상 '시작이 반'이란 말은 헤시오도스가 쓴 '일과 날'에서 처음 발견된다. 그는 우리가 아는 그리스 신들의 계보를 정리·창작한 인물이며 호메로스와의 시 경연에서 이긴 바도 있는 당대의 천재 시인이다. 플라톤은 '시작은 반 이상이다'라고 말하면서 시작의 중요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인물과 다른 맥락에서 시작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의 강조점은 '잘못된 시작'에 있다. 그는 기원전 480년대 중반의 과두정치 체제에서 관직에 있던 두 청년 사이의 벌어지는 동성애-양성애 복합사건의 원한 감정에 의해 촉발된 정변'을 사례로 들며 잘못된 시작이 비참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연초의 중대결심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은 헤시오도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아마도 소포클레스일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일이든 시작을 잘하는 사람은 그 끝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해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그는 '끝'에 방점을 두기 때문에 박수받아야 한다. 역시 문제는 '잘'이다. 용두사미는 '잘'의 요건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란 걸 소포클레스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하준 한남대학교 탈메이지교양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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