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준 한남대학교 탈메이지교양교육대학 교수
이하준 한남대학교 탈메이지교양교육대학 교수
연초에 우리는 습관적으로 무엇인가를 `시작`하려 한다. 이 `시작`은 바람, 희망과 같은 소극적 의미와 의지, 결심, 목표라는 적극적 의미를 함축한다. `올해는 반드시 금연을 할 거야`,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한 해를 만들 거야`, `꼭 여행을 갈 거야`와 같은 것이 가장 흔하게 접하는 새해 결심이다. 동료나 지인들로부터 위와 같은 연초 결심을 들으면 누구나 으레 `시작이 반이야, 잘 될 거야`라고 덕담을 한다. 빈말이든 진심이 담긴 말아 든 모두 `시작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은 참 재미있는 속담이다. 우리는 이 말이 우리 민족 경험지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속담은 영국, 독일에도 있다. 모르긴 해도 아마존 밀림 지역에 거주하는 부족이나 안데스산맥 혹은 오스트리아 원주민들에게도 같은 의미를 갖는 속담이 있을 것이다. 대홍수 신화가 어느 문명권에서 발견되듯이 말이다.

문헌상 `시작이 반`이란 말은 헤시오도스가 쓴 `일과 날`에서 처음 발견된다. 그는 우리가 아는 그리스 신들의 계보를 정리·창작한 인물이며 호메로스와의 시 경연에서 이긴 바도 있는 당대의 천재 시인이다. 플라톤은 `시작은 반 이상이다`라고 말하면서 시작의 중요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인물과 다른 맥락에서 시작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의 강조점은 `잘못된 시작`에 있다. 그는 기원전 480년대 중반의 과두정치 체제에서 관직에 있던 두 청년 사이의 벌어지는 동성애-양성애 복합사건의 원한 감정에 의해 촉발된 정변`을 사례로 들며 잘못된 시작이 비참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연초의 중대결심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은 헤시오도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아마도 소포클레스일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일이든 시작을 잘하는 사람은 그 끝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해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그는 `끝`에 방점을 두기 때문에 박수받아야 한다. 역시 문제는 `잘`이다. 용두사미는 `잘`의 요건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란 걸 소포클레스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하준 한남대학교 탈메이지교양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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