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대전일보DB·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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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대전청사 소재 중소벤처기업부의 세종 이전 논란이 불과 석 달 만에 대전시의 `완패`로 종지부를 찍었다. 중기부의 세종행 선언에서 정부의 관보 고시로 이전이 확정되기까지 대전시 광역행정시스템은 체계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고 무기력한 대응으로 일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시탐탐 세종 전입 기회를 엿보던 중기부의 움직임을 미리 잡아내지 못했으며, 정부의 논리와 프레임에 갇혀 중기부 이전의 불요불급함을 선명하게 드러내는데 해태(懈怠)했다. 그 결과는 전체 지역사회의 투쟁역량 결집 실패로 수렴됐다.

대전 시민사회가 각고의 노력으로 일궈낸 `대전 혁신도시` 지정과 무려 22년 동안 대전에서 성장한 중기부의 세종 이전을 교묘히 맞바꾼 것이 아니라면 물 흐르듯 순탄했던 이전 작업과 정·관가 일부 유력인사의 애매모호한 발언에 기댄 대전시의 뜨뜻미지근한 대응태세와 방식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중기부 세종 이전을 불가역적 단계로 매듭지은 정부 고시에 대해서도 대전시는 원고지(200자 기준) 3장이 채 되지 않는 500자 분량으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는 내용의 입장문만 달랑 내며 사실상 백기투항했다. 허태정 시장 명의인 입장문에는 150만 시민을 향한 진정성 어린 `유감` 표명 조차 없었다.

정부조직을 관할하는 행정안전부는 지난 15일 중기부 세종 이전을 골자로 하는 `중앙행정기관 이전계획 변경`을 관보에 고시하는 것으로 법적 절차를 모두 마무리했다. 중앙행정기관의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 이전을 다루는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행복도시법)에 따라 행안부는 지난해 12월 17일 대국민 공청회를 열었고 이어 관계기관 협의, 대통령 승인을 거쳐 최종 행정절차인 관보 고시에 이르렀다. 이로써 중기부는 지난해 10월 16일 행안부에 `세종이전의향서`를 제출하고부터 90일 만에 일사천리로 세종 이전이라는 조직 숙원을 이루게 됐다.

행안부는 이전계획 변경고시에서 2017년 7월 부(部) 승격, 정책 유관기관 사이 업무협력과 행정효율 강화를 이전사유로 명시했다. 중기부가 행복도시법에 규정되지도 않은 세종이전의향서를 제출하며 이전 명분으로 내세운 논리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중기부 본부 직원은 499명으로 오는 8월까지 세종으로 이전하는데 사무실 임차료(1년) 포함, 104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됐다. 행안부는 보도자료에서 "중기부가 이전하면 23개 중앙행정기관과 22개 소속기관의 공무원 1만 5601명이 세종에 근무하게 된다"고 밝혔다.

중기부 세종 전출은 이전 의사를 전격 공식화한 중기부의 일방통행과 `부는 세종으로`라는 논리 아래 이를 승인해준 정부의 합작품으로 기관 이전의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점과 별개로 허 시장과 대전시의 정치·행정 역량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기부 세종이전론은 차관급 외청인 중소기업청에서 부로 승격하면서 본격적으로 불붙은 현안으로 비단 어제오늘의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홍종학 초대장관 재임시절인 2018년 70%에 가까운 직원들이 세종 이전에 찬성한다는 중기부 노조의 설문조사가 나왔고, 박영선 현 장관은 취임 직후인 2019년 4월 국무회의에서 중기부 세종 이전 문제를 거론한 바 있다. 그로부터 1년여 흐른 지난해 10월 중기부는 세종이전의향서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당시 대전시는 대전일보 보도 이후에야 뒤늦게 `입장문`을 냈다. `관계부처와 논의를 거쳐` 의향서를 제출했다는 중기부와 정부 진영의 수 싸움에서 이미 밀린 셈이다.

허 시장은 지역 출신의 박병석 국회의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세균 국무총리, 진영 당시 행안부 장관 등을 잇따라 만나 중기부 대전 존치를 촉구했을 뿐 실제 관철시키는 정치역량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중기부 이전 여부는 대전시민 의견을 경청해 신중히 결정하겠다. 시민 의견을 무시하며 이전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이낙연 대표의 언급 한마디에 허 시장은 "이례적이고 진일보한 의견이다. 부처 이전 논란은 일단락된 것"이라고 반겼으나 중기부는 예정대로 이삿짐을 꾸리게 됐다. 중기부 이전 고시 당일 허 시장은 입장문을 통해 "중기부 이전은 정부의 행정절차 이행 등으로 이미 예고됐던 것"이라며 "정부기관의 대전이전 조치와 동시에 중기부 이전을 발표하지 않은 것에 절차적 아쉬움이 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청 단위 기관의 대전 이전과 공공기관 이전방안에 대해 막바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시민 입장이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문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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