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성적 도합 6패 쓴 충청
연고성 닿는 윤석열 존재와
대망론 융화될지 두고볼 일

나병배 논설위원
나병배 논설위원
충청대망론이 인구에 부쩍 회자된다. 이 대망론의 중심부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있고 아울러 그가 완주할 것임을 상정하는 지역정서와도 무관치 않을 듯하다. 현 시점에서 윤 전 총장이 대망론의 코어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검찰총장직 전격 사퇴에 따른 컨벤션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주초 복수 여론조사 기관 대권 지지율 수치를 보면 심상치 않다.

특정 지역 대망론의 제1 필요조건은 연고성이라 할 수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기세가 맹렬해 보이는 차기 대권주자여도 충청 연고자일 때라야 충청대망론으로 수렴되게 된다. 윤 전 총장은 대체로 이에 부응한다는 데 큰 이질감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서울 태생이지만 충청과의 끈은 충남 논산 노성면 출신으로 공주농고를 졸업한 그의 부친이 이어주고 있다. 충청대망론과 접목되는 것으로 보는 지점이다.

이 충청대망론의 특징적 요소로 금강수계와의 상관성도 흥미롭다. 역대 충청 출신 정치인들의 대권 도전사를 보면 그런 지리적 측면이 포착된다. 87년 13대 대선을 시작점을 삼으면 충청대망론 주역은 주로 금강수계를 끼고 있는 지역 출신이 차지했다. 그 선두에 충남 부여 출신으로 현대사의 풍운아 JP(김종필 전 총리)가 있었다. 3김시대를 풍미한 그의 대선 전적은 1전 1패.

14대 대선은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 양강 대결 구도로 치러졌다. 충청 출신은 도전자가 없었다. 당시 JP는 YS와 한배를 탄 상황이었다. 15대 대선은 충청 후보 풍작이었음이 확인된다. 충남 예산에 선영이 있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출전한 가운데 논산 출신 이인제 전 의원도 가세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 1위 승자인 DJ와 이 전 총재의 표차가 39만 표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이 수치는 충청에서의 1·2위 후보간 득표차와 거의 일치한다.

충청대망론은 세기를 넘어 16대 대선에서도 계속됐다. 이 전 총재가 재수에 나섰지만 이변은 없었고 충청의 누적 패수만 늘었다. 17대 대선 때도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 전 총재와 이 전 의원의 `충청더비`가 성사됐지만 결과는 별무소득이었다. 이후 18·19대 대선에서는 충청 출신 본선 진출자가 배출되지 않았다. 이렇게 충청대망론이 번번히 꺾였지만 13대 대선에서 19대 대선까지 7차례 대선중 4개 대선을 통해 대권을 노크한 것에 대한 정치적 의미는 약화되지 않는다. 부채도 자산이듯 실패도 정치자산으로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19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논산 출신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일합을 겨룬 것도 그런 측면이 있으며 대선 주자 지지율 상한가를 치기도 했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사례도 있다.

그러다 보니 20대 대선을 앞두고 윤 전 총장을 통해 충청대망론이 소비될 것으로 보는 전망과 예측에 힘이 실린다. 그리고 윤 전 총장을 충청 출신으로 의제하게 되면 그 또한 금강수계 지역 사람 범주에 들어가고 그 점에서 기대치가 더해진다. 충청 대권 주자 배출은 주로 금강수계 인접 지역이 담당했다. 그중 논산 출신의 대권 도전 표본수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보통시 지역에서 유의미한 대선 주자가 3명째 나온다면 흔한 풍경은 아니다.

충청 출신 역대 대선 본선 진출자와 예선 출전자들의 경우 금강수계와 연접한 출신들이라는 공통점이 추출된다. 공주, 논산, 부여 등은 금강 본류가 관통하고 있고 다른 지역에도 금강 제1 지류 또는 제2 지류 한 두개 정도는 흐르고 있다. 그런 차에 윤 전 총장 존재감이 부각되면서 지역 여론의 유연성이 주목되고 있다. 그의 충청 연고권에 대한 `부진정소급`이 수용되고 내년 대선에서 충청대망론과 융합되면 흥행 기록을 쓸 수도 있다. 대망 품은 금강 `대품강`이 될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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