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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봄 그리고 아파트

2021-04-07 기사
편집 2021-04-07 07:05:15
 문승현 기자
 starrykite@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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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잎이 사뿐 물웅덩이에 앉았다. 잦은 비에 속절없이 봄이 진다. "'청춘의 날들은 흩어져가고 널린 백골 위에 사쿠라 꽃잎 날리네.' 오래 쓴 칼이었다. 그 칼에도 검명이 새겨져 있었다. 이 칼을 쓰던 자를 죽였느냐?" 김훈의 '칼의 노래'는 아득한 봄과 죽음 사이에 있다. "안 넣으셨죠?" 생애최초고 뭐고 일단 뭐라도 넣어봐야 하지 않을까. 고민에 대한 조언은 "에이 생초를…" 이었다. 나오는 분양은 없고 집값은 계속 오르니 속이 타들어간다. 실속 없는 무주택 실수요자 타이틀도 지긋지긋하다. "그래도 너무 아깝잖아요. 기다린 김에 조금만 더 기다려 보면…혹시 알아요 대박 날지?" 다시 가격 상승의 롤러코스터를 지켜보기로 한다. 저금리 유동성 잔치도 슬슬 파장 분위기다.

"정말 저기는 안 오를 것 같았는데…" 대전지역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혀를 찼다. 입지도 아니고 학군도 아니고 애매하다는 얘기다. 최근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 국민평형이라고 하는 30평형대 한 채가 11억 원 가까운 가격에 거래됐다. 분양가와 비교하면 불과 1년 만에 3배 가까이 웃돈이 붙었다. 정부와 시장의 공조로 만들어낸 '로또청약' 광풍의 한 단면이다. '공무원은 특별공급으로 몇 억 씩 해먹는다는데 결국 상투 잡은 건가요?' 영혼까지 끌어모은다(영끌)기보다 영혼을 팔아넘긴다는 게 정확할 것 같은 아파트 매수의 상승장에서 걱정이 밀물처럼 차오른다. 누군가는 금융비용 댈 걱정에 밤잠조차 이루지 못한다.

벚꽃 잎 떨어진 자리엔 곧 매미가 차고앉아 울 것이다. 뙤약볕 나무그늘 아래에서 한여름 매미 울음소리를 지치도록 들어야 숙살(肅殺) 같은 가을이 온다. 김훈은 '잎'이라는 산문에서 "봄에는, 봄을 바라보는 일 이외에는 다른 짓을 할 시간이 없다. 지나가는 것들의 찬란함 앞에서 두 손은 늘 비어 있다. 나는 봄마다 속수무책으로 멍하니 바빴다"고 썼다. 포근한 봄바람 타고 꽃잎은 나풀거린다. 이 시대 최고의 환금성 자산 아파트 가격은 떨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금 가격이 어깨쯤인지, 머리끝에 올라 상투를 잡았는지 말만 무성하다. 하릴없이 창밖 봄 풍경에 취할 밖에. 문승현 취재3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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