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현 취재3부 차장
문승현 취재3부 차장
개그맨 박명수를 좋아한다. `어록`으로 회자되는 파격적 언어구사능력에 반한지 오래다.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 고생 끝에 골병 든다, 티끌 모아 티끌. 박명수는 이렇게 고정관념과 언어적 예측 가능성을 허물어 버린다. 최고의 어록으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늦었다`를 꼽겠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통상의 규범을 깡그리 깨뜨려 놓았다. 박명수는 여기에 한마디 덧붙인다. `당장 시작해라.` 실기(失期)를 자각했다면 행동하라는 격언에 가깝다. 이 어록을 유성복합터미널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2010년 시작된 4차례 민간공모가 모두 무산됐다. 헛심만 빼는 통에 시민들은 지쳤고 대전시는 공영개발로 돌아섰다. 2023년 4월 착공, 2026년 4월 준공에 이어 7월 터미널 운영에 들어간다는 일정표도 나왔다. 재정을 투입하는 방식이니 이변이 없는 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지역사회가 원하던 유성복합터미널의 원형은 무엇이었을까 싶어서다.

대한민국 6대 광역도시라는 위상에 걸맞고 대전과 주변부를 연결하는 통합적인 교통서비스를 제공하며 각종 편의시설이 두루 갖춰진 `복합` 터미널 아니었나. 화수분이 아닌 이상 예산을 마구 퍼다 쓸 수도 없고 쓴 만큼 채워 넣어야 할 것이다. 재정의 제로섬(zero-sum)을 맞추기 위해 기본 기능만 제공하는 어정쩡한 규모의 터미널이 만들어지고 어중간한 수준으로 주상복합아파트를 공급할 공산이 크다. 11년 동안 쌓인 복합개발의 기대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다시 민간공모로 추진한다고 가정하면 사업성을 높일 필요가 있고 참여기업의 입찰자격도 강화해야 한다." 직전 민간공모가 무위로 돌아간 지난해 9월 대전시 고위공무원이 한 말이다. 민간의 요구와 정확히 일치한다. 공영개발하겠다고 발표한 게 6개월 전인데 돌이키자니 너무 늦은 것 같고, 재차 민간공모를 한다고 해서 순항하리란 보장도 없으니 답답할 노릇일 테다. 그렇다고 공공성과 경제성 사이에서 애매하게 줄타기하며 이도저도 아닌 볼품없는 터미널을 짓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오히려 근본적이고 원천적인 재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문승현 취재3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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