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문양·패턴; 이응노의 문자추상' 특별전

사진=이응노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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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이 낳은 `현대미술의 거장` 고암 이응노 화백은 세계미술의 보편성 속에 전통예술이 지닌 깊은 미감을 바탕으로 서구 예술을 정면으로 응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역동적이고 강렬한 필력을 따라가다 보면 전통적인 멋과 현대적인 감성이 공존하는 지점과 마주한다. 이응노의 문자추상 작품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이응노미술관 특별전 `문자·문양·패턴: 이응노의 문자추상`에서 그의 예술세계를 탐미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문자추상의 시작`을 다루는 제1전시실은 1960년대 초반 작품부터 양식이 무르익어가는 1960년대 후반까지의 문자추상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1960년 파리에 정착한 이응노는 콜라주 작품과 더불어 문자와 수묵 기법을 활용해 새로운 추상화를 창작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문자추상은 붓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리듬감 있게 활용하거나, 아교나 한지 등의 재료를 통해 화면을 밀도 있게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그림 표면을 긁거나 구기는 등 거친 작업을 통해 갑골문 혹은 고대 비석과 유사한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냈다. 종이·먹 등의 한국적인 재료로 현대적 미감의 추상화를 창작한 점도 높이 평가받는다.

`문자와 도안`이라는 타이틀로 막을 여는 제2전시실은 문자의 구조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견고한 구성의 1970년대 작품으로 구성됐다. 이응노는 한자 획의 복잡한 구조를 `구도의 아름다움`으로 승화했으며, 한글 자모의 직선과 곡선이 만들어내는 형태를 조형적으로 활용했다. 그의 도안은 프랑스 세브르 국립도자기 공장에서 도자기로 제작됐으며, 1972-1982년 사이 프랑스 국립 타피스트리 제작소에서 8점을 사들여 타피스트리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제3전시실에서는 판화로 표현한 문자추상이 펼쳐진다. 문자를 사용한 판화 중 일부는 전각 형식을 빌렸다. 이응노는 문양을 목판이나 고무판에 새긴 후 판화처럼 찍거나 탁본처럼 뜨기도 했다. 문자 패턴을 붉은 물감으로 찍은 프린트는 얼핏 인장과 유사해 보인다. 이것은 동양의 전각 전통을 추상 영역으로 확장해 현대적으로 응용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서예와 한자는 이응노의 문자추상 세계의 원천으로 작용함을 확인할 수 있다.

`필체와 군상`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제4전시실에서 필체와 군상의 연관성을 살펴볼 수 있다. 그의 말년은 주로 군상 연작 창작에 매진함과 동시에 문자추상 작품 창작에 매진했다. 70년대 후반의 소품을 보면 다양한 필체를 통해 문자를 실험하고 있는 점이 발견된다. 한자는 물론 아랍어 글씨의 곡선을 그림의 소재로 실험하기도 했으며 한자를 대담하게 그림문자 형식으로 변형해 픽토그램처럼 쓰기도 했다. 중첩해 흘려 쓰며 복잡한 문양 패턴을 만들어가는 방식은 군상의 소용돌이치는 화면을 구성하는 필체와 매우 닮아있다. 글씨를 쓰듯 인물을 그려 나가는 군상의 작업 방식이 서예의 필법, 특히 초서체와 유사한 점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회화·조각·도자·서예·타피스트리 등 다양한 장르의 문자추상 작품 144여 점을 전시한 이번 특별전은 문자추상 작품을 역대 최다로 진열한 전시다. 기존보다 다채로워진 작품 구성으로 자기 미술의 현재화와 주체적 사고, 세계미술로서의 역동적 힘이라는 과제 앞에 고뇌하고 분투했던 이응노 예술의 정수를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전시회는 오는 7월 11일까지 이응노미술관에서 열린다. 이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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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응노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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