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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이슈] 안견의 역작…꼭 찾아와야 할 문화유산

2021-08-17 기사
편집 2021-08-17 16:11:41
 박계교 기자
 antisofa@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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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도원 안견이 3일 만에 완성
신숙주 등 당대 문장가 21명 찬시로도 유명
국가적 차원의 반환 노력 필요하다는 지적

첨부사진1몽유도원도 [사진=대전일보DB]

신라의 솔거, 고려의 이녕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화성(畵聖)으로 평가받는 현동자(玄洞子) 안견(安堅). 안견의 역작은 우리가 잘 아는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다.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도원을 안견이 3일 만에 완성, 회화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안견이 1447년(세종 29)에 그린 산수화인 '몽유도원도'는 세로 38.7㎝, 가로 106.5㎝ 크기다.

'몽유도원도'는 현재 일본 덴리시의 덴리대학 부속 덴리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다. 안견의 고향인 서산지역에서는 한 때 몽유도원도 반환 운동 등을 해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을 자극한다는 이유 등으로 반환운동은 멈춘 상태다. 그래도 대한민국 안견미술대전, 전국학생미술공모전, 안견선생 추모제, 안견학술제, 대한민국 안견미술모색전 등 안견의 예술혼을 잇고 있다.

한동안 잠잠하던 안견 선생 얘기가 흉상 제작이 시작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안견 선생의 얼굴이 현대 과학으로 연말이면 우리에게 다가온다. 언젠가는 찾아와야 할 '몽유도원도'와 이를 그를 안견을 따라가 본다.



△안견

현재까지 안견 선생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안견이 조선 초기 세종부터 세조 때까지 활동한 화가정도다. 안견 선생의 출신지 논란이 많았던 이유다. 그러나 역사적 고증을 통해 안견 선생이 서산 지곡 출신으로 굳어졌다.

조선시대 학자인 신숙주가 1551년 발간한 보한제집, 1619년(광해군 11) 한여현이 편찬한 충청도 서산군(현재 서산시) 읍지인 호산록에 안견은 '지곡(현재 서산시 지곡면)'으로 나와 있다. 광해군의 태자 봉임대군의 사부가 되는 안응창 공이 발간한 순흥안씨 계보인 죽계사적에도 '지곡인'으로 기록돼 있다. 또, 1984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안견은 서산 '지곡인'이 확실하다고 판정했다.

안견은 조선 초기부터 중기까지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고, 초상화와 사군자, 의장도 등에도 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현재 그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그림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

그는 세종 때 그림 그리는 일을 담당하던 관청인 도화원의 종6품 벼슬인 선화에서 정4품 호군까지 올랐다. 조선 초기 화원으로서 종6품의 제한을 깨고, 정4품까지 승진한 파격적인 사례다. 조건 건국이래 최초다. 그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반증한다.



△몽유도원도

앞서 언급했듯이 안견의 유일한 진작이 '몽유도원도'다. 안평대군은 안견을 총애했다. 어느 날 안평대군이 박팽년과 함께 복숭아밭에서 노는 황홀한 꿈을 꾸었고, 안견이 이 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이 '몽유도원도'다. 1447년 4월 20일 그리기 시작, 3일 만인 23일에 완성했다.

안견기념관에 따르면 '몽유도원도'는 왼쪽 하단 현실세계부터 오른편 상단부의 도원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체의 그림이 몇 개의 산군(山群)으로 형성돼 있으며, 이 산군들은 서로 떨어져 있는 듯 하면서도 하나의 통일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좌반부는 정면에서 본 듯이, 우반부는 내려다 본 듯이 부감법으로 표현해 넓은 공간감을 자아내고 있다. 현실세계는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린 듯 한 느낌이고, 왼편의 도원세계는 위에서 바라보는 듯하다. 산들이 높고, 골짜기가 깊으면서도 왼쪽 하단부부터 오른쪽 상단부쪽으로 대각선을 이루며 점점 상승해 웅장함을 나타내고 있다. 안견의 세련된 구성감각을 엿볼 수 있다는 게 후대의 평가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발문부터 김종서, 신숙주, 정인지, 박팽년, 서거정, 최항, 이개, 성삼문 등 당대 문장가 21명의 찬시가 친필로 붙어있다. '몽유도원도'는 그림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조선초기 문인들의 문학과 서예적 성취를 알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크다.

'이 세상 어느 곳을 도원(桃源)으로 꿈꾸었는가. 은자(隱者)들의 옷차림새 아직 완연하거늘. 그림으로 그려놓고 볼 진대 정말 좋은 일이니. 천여 년을 전하여 봄직하지 아니한가'. 안평대군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보고 이런 시를 썼다.



△몽유도원도 반환 운동

어떤 경로로 '몽유도원도'가 일본으로 흘러 들어갔는지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갔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서산지역에서는 1990년대 초 '몽유도원도'를 모셔와야 한다는 운동이 일었다. 서산출신 안견 선생의 몽유도원도가 텐리대학에 소장되고 있음을 계기로 서산시와 덴리시가 자매결연을 한 건 1991년. 자매결연 당시 서산지역 인사들 사이에서 민간차원의 '몽유도원도' 반환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오히려 일본을 자극한다는 이유 등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반환운동 당시 일부 인사만이 '몽유도원도'를 보고 왔을 뿐 현재는 아예 볼 수 있는 창구는 닫혔다.

신응식 안견기념사업회장은 "당시 민간차원에서 몽유도원도 반환운동을 했지만 학계에서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는 조언에 따라 보류를 하게 됐다"며 "몽유도원도 반환이 민간차원에서는 쉽지 않은 만큼 국가적 차원의 외교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서산시도 몽유도원도의 반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2000년대 초 몽유도원도를 실측 크기로 제작한 영인본을 받는데 만족했다. 서산시는 2016년 말 덴리시 우에다 시게하루 비서과장에게 자매결연 교류 취지를 환기, 서산지역민들의 '몽유도원도' 관람을 요구했다.

그러나 덴리시는 소장처인 덴리대학의 '몽유도원도에 대한 취급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첨부, 열람을 거부했다.

덴리시는 "540년 전인 1477년 견직물에 그려진 몽유도원도는 두루마리종이 형태로 특히 취급에 주의가 필요한 자료 중 하나"라며 "펼칠 때에는 안료의 탈피와 열의 균열이 심해질 위험성이 있는 만큼 이러한 사정 때문에 열람을 금지하고 있다"고 회신했다.

몽유도원도가 일본도 아끼는 작품인 만큼 반환이 어려운 일이지만 서산지역 인사들은 대를 이어 찾아와야 할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현대과학으로 돌아오는 안견

지난 12일 서산문화재단에서 특별한 협약이 이뤄졌다. 안견 선생의 흉상을 제작하기 위한 것. 서산시문화재단 조규선 대표와 신응식 안견기념사업회장, 조용진 한국형질문화연구원장, 박수복 해인미술관장이 '현동자 안견 선생 흉상제작'을 위한 업무협약을 했다. 현재까지 안견 선생 얼굴 등 모습이 전해지는 것은 없다.

흉상은 국가표준영정·조각심의위원장을 지낸 얼굴복원 권위자인 조용진 박사가 맡았다. 조 박사는 고려말 천문학자인 류방택 표준영정을 제작하는 등 다수를 복원했다. 제작비는 박수복 화백이 후원키로 했다.

흉상 복원 여러 기법 중 조 박사는 씨족 유전자 풀을 활용할 생각이다. 안견이 순흥안씨이기 때문에 현재 순흥안씨 후손들을 조사, 수치화해 복원하려한다. 순흥안씨 후손 70명에 대해 300군데를 측정하고, 1200항목을 수치화해 당시 안견 얼굴을 복원하려 한다. 흉상제작은 후손 형질 자료 수집과 측정, 데이터 처리, 제작, 완료 등 4단계를 거쳐 올 연말 쯤이면 윤곽이 나올 전망이다.

조 박사는 "기법에 따라 현재 순흥안씨의 후손들의 얼굴 공통점을 찾다 보면 조선시대를 살았던 안견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며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이 서산출신으로 지역민들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정성을 다해 복원, 흉상제작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규선 대표이사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안견 선생을 현대 과학으로 복원해 우리가 볼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았다"며 "안견기념사업회와 서산문화재단은 조 박사가 복원한 얼굴을 바탕으로 흉상을 제작하고, 나아가 영정사진까지 그려 안견 선생을 기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견의 흉상 제작을 기점으로 한동안 잊혀 있던 '몽유도원도'를 찾기 위한 범 시민 운동으로 또 다시 번질 지 주목된다. 정관희·박계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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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안견기념관 대전일보 DB [사진=대전일보DB]

첨부사진312일 서산시문화재단에서 조규선 대표이사와 신응식 안견기념사업회장, 조용진 한국형질문화연구원장, 박수복 해인미술관장이 '현동자 안견 선생 흉상제작'을 위한 업무협약을 했다.사진=박계교 기자

첨부사진4안견기념사업회는 매년 10월 서산시 지곡면 안견기념관에서 현동자 안견 선생 추모제를 하고 있다.사진=안견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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