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다분한 언론중재법안의 처리가 또 하루 미뤄졌다. 여야는 어제 개정안을 놓고 막바지 협상을 벌였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기류를 볼 때 29일 법안의 강행처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언론중재법은 기존 안에서 다소 첨삭이 됐지만 독소 조항이 그대로 남아있다. 징벌적손해배상은 당초 피해액의 5배에서 3배로 수정됐지만 5000만 원 하한선을 두면서 오히려 강화됐다. 징벌적배상의 대상이 되는 `허위조작 보도`를 `진실하지 아니한 보도`로 고치려는데 이 또한 추상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언론사의 매출액과 연계해 배상액 규모를 산정해 영향력이 큰 매체의 처벌 수위를 높이려는 시도도 문제다.

징벌적손해배상이 도입되면 언론의 환경감시 기능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아직 법적으로 밝혀진 게 없는데 보도를 내보냈다가는 필화를 당할 수도 있다. 대장동 개발사업이나 고발사주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도 어렵게 된다. 어느 기자가 회사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배상금을 물 수도 있는데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작성하겠는가. 징벌적손해보상 보다 더 큰 문제는 보도된 기사의 열람 차단이다.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기사의 진위와 상관없이 차단을 요구하면 언론사는 기사를 내릴 수밖에 없게 된다. 기사의 사실 여부가 판단이 날 때까지 독자들이 접근할 수 없다는 얘기다. 기사열람차단은 결국 국민들의 알권리를 차단하게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언론중재법안으로 국제적인 망신을 톡톡히 당하고 있다. 세계 120여 개국이 참여한 국제언론인협회는 최근 한국과 파키스탄의 언론 규제법안을 언론탄압 사례로 보고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도 언론중재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한국을 그동안 언론 자유의 롤 모델로 꼽던 많은 다른 국가에도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한 채 법안이 시행되면 언론의 자유는 위축되고 민주주의는 뒷걸음칠 게 뻔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민주당은 합의가 되지 않으면 법안을 강행 처리할 태세다. 국민의 알권리를 짓밟고 나라 망신시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즉각 폐기 처분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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