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길 시인
박순길 시인
길가를 걷다 보면 코스모스가 한창 피어있다. 코스모스의 하얀 색, 빨간 색, 분홍 색이 색의 농담을 더해 한들거리면 즐거운 날 한복을 입은 여인들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누런 벼가 고개 숙이고 있는 코스모스 길을 걷다 보면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을 보람 없이 보낸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아쉬움은 채워야 할 것을 채우지 못하고 얻어야 할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생기는 마음의 공허함이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무엇을 채우려 했을까. 딱히 계획된 것도 없고 목표한 것도 없다. 다만 세월을 그냥 보내는 것 같아 그저 쓸쓸할 뿐이다.

코스모스 길은 여럿이 걷는 길이 아니라 혼자 걸어야 제 맛이다. 사색의 길이기 때문이다. 양복을 입고 깨끗한 구두를 신고 걷는 길이 아니라 등산화 차림의 헐렁한 복장과 구겨진 바지에 적당한 메이커의 운동화가 어울린다. 코스모스 길을 걷다가 누가 먹다 버린 이빨 자국 있는 생고구마라도 보이면 한참을 지켜본다. 제구실 못하고 버려지는 인생의 어느 부분으로 후회스러움이 있을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코스모스는 집 밖에 피어있다. 집 밖은 대문이 없다. 모든 것이 열려있는 길이고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이 없다. 포용하고 수용할 수 있는 여유로운 길이다. 이름은 떠올라도 얼굴이 가물거리는 친구, 바쁘다는 이유로 친구가 사는 곳을 그냥 지나쳐 왔을 때의 미안함, 안부 전화 한 통화로 다가서지 못한 나의 행동인 것 같다. 잘못은 없어도 배려 없는 내 탓으로 다가온다. 코스모스 길은 주변의 산도 보고 자연의 변화도 느끼면서 걸어보는 자아성찰의 길이다.

코스모스는 누가 가꾸지 않아도 스스로 잘 자란다. 가을을 아름답게 꾸미고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거리도 만들어준다. 마음을 담아주지 않은 바람이 코스모스 곁을 지난다. 나도 지난 일은 마음 담아두지 않기로 한다. 지나고 보면 욕심이고 채우지 못한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머지않아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이 길도 낙엽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떠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년에 이 길을 걸을 때는 보람 있는 일이 있었다고 의미를 새기는 해가 될 것을 다짐을 해본다. 박순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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