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총리가 충청의 대표 정치인으로 부상한 것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충남지사에 당선되면서부터다.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도지사이자 선이 굵고 시원시원한 스타일로 단박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9년 12월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해 지지자들의 반대 시위에도 불구, 도지사직을 과감히 던져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이 지사는 "세종시는 충청도의 영혼이 걸린 문제"라는 말로 지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그의 행동은 세종시 원안을 바랐던 지역민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이를 계기로 이 전 총리는 충청권에서 입지를 굳혔고, 세종시 원안을 주창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가까워졌다. 그는 2015년 2월 박근혜 정부의 두 번째 총리로 임명되면서 정치 인생에 정점을 찍게 된다.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심대평 전 충남지사의 뒤를 이어 `충청 대망론`의 주인공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하나 총리로서의 역할을 채 하기도 전에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돼 63일 만에 사퇴하는 불명예를 겪고 만다. 뒤늦게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명예회복을 했지만 정계복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지난해 총선에서도 천안지역 출마가 점쳐졌지만 주변의 만류로 끝내 출마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돌아보면 이 전 총리는 `충청의 자존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세종시에 지사직을 걸었던 이 전 총리가 지역민들의 곁을 떠났다. 충청권 푸대접론이 불거지고 있는 요즘, "몸으로 말하는 정치인이 있어야 국민이 믿어준다"는 이 전 총리의 메시지가 새삼 떠오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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