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선택권 확대 등 근본 취지 공감
교육과정, 교원수급 등 걸림돌 우려
백 년 교육대계 위한 문제 해결 중요

정재필 취재 1팀장
정재필 취재 1팀장
고교학점제는 대통령 1호 `교육 공약`이다. 몇 년 전 전국적 이슈였던 자율형 사립고 폐지와 함께 현 정부의 대표적 교육정책이다.

고교학점제는 고교생이 대학 수업처럼 공통 교과목을 이수한 뒤 적성이나 흥미, 선호 등에 따라 선택과목을 골라 수업을 듣고 기준 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하는 제도다. 학교의 수업과 관련된 학사운영이 `단위`에서 `학점`으로 전환되고, 학업 성취율과 과목 출석률에 따라 졸업이 결정되는 것이다.

당국은 고교 학점제를 시행하면 학생 개개인의 다양성을 지원하고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학생들의 다양성을 충분히 채워주지 못하고, 의욕까지 꺾었던 수직적인 교육과정에 대해 변화를 일으켜 개개인의 다양한 역량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2월까지만 해도 일반고의 경우 현 초등학교 6학년이 고교 1학년이 되는 2025년에 고교학점제를 전면 시행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지난 8월 도입 시기를 사실상 2년 앞으로 앞당겼다. 현 중학교 2학년생이 고교에 입학하는 오는 2023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한다며 계획을 수정했다.

대전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2023년까지 모든 고등학교에 고교학점제가 도입, 운영된다. 시교육청은 최근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 전 경험을 위해 일반고 연구·선도학교 및 직업계고 선도학교를 지역 내 전 고교에 확대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번 안은 교육부 `고교학점제 전면 적용을 위한 단계적 이행 계획`에 따른 후속조치다. 이를 위해 고교학점제 전담부서 설치, 지원센터 개소, 추진단 구성, 사업별 현장지원 및 학부 지원 등을 추진키로 했다.

그런데, 고교학점제가 학생의 교과목 선택 권한 확대 및 보장이라는 큰 매력에도 불구하고, 교육현장에서는 우려의 시각이 팽배하다. 전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8월 전국 고교 교사 22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72.3%(1595명)가 고교학점제에 반대했다는 점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치가 아니다.

미래사회가 요구하며,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학생의 과목 선택권 확대와 고교학점제 시행에 이견을 달 국민은 없다. 다만, 학생 스스로 적성이나 흥미를 진로와 연계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면 수업 참여를 충실히 할 것이라는 당국의 시각에 동의하지 못한다. 과목 선택이 학생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고, 흥미와 적성에 따른 과목 선택이 이뤄질 지도 의문이다. 흥미와 적성보다 입시와 연계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한정된 인적·물적 조건도 걱정이다. 교원 부족에, 교과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실에서 과연 학생들이 선택할 선택지가 풍부할지 의문스럽다.

아울러, 정부가 상대평가를 고집하며, 정시 대입제도를 계속 확대하는 상황에서 고교학점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근본 취지에 위배되고 역설적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진학 제일주의를 넘지 않고서 제대로 된 고교학점제 운영을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고교 학점제가 이른 나이에 학생들에게 진로 선택을 강요할 수 도 있다는 지적도 예사롭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학생들이 인문학, 사회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비 수도권과 수도권의 교육 격차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소위 SKY로 불리우는 대학과 수도권 인근 교육청 간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움직임이 벌써부터 부산한 걸 보면 고교나 대학이 많아 공동 교육이 수월한 수도권은 지방과 달리 다양한 선택과목을 개설할 수 있고 이는 곧바로 입시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우리 교육 현실은 대입제도 하나만 바꿔도 혼란과 진통이 극심하다. 초·중등 교육은 물론 대입에 큰 영향을 미칠 고교학점제를 빠른 시일 내 도입, 운영한다는 당국의 방침이 걱정스럽다. 교육과정, 교원 수급, 예산, 시설 등을 종합적으로 설계한 뒤 현실적인 문제들을 하나하나씩 해결해 간 뒤 실시하는 게 백 년 교육대계를 위한 일이 아닐까 싶다. 정재필 취재 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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