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우리 사회가 가진 정서 중 `빨리빨리`가 있다. 한번 시작한 일은 마무리 지어야 직성이 풀리고, 할 일이 첩첩이 쌓여 마음은 급한데 주변의 느려 터진 모습을 보며 속을 끓인 적이 있다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빨리빨리`의 장점은 분명하다. 단시간 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우리나라가 최단기간 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쾌거를 이룬 것도, 현재 누리고 있는 쾌적하고 편리한 IT 환경과 배송 체계도 이런 정서에 영향받은 바가 크다.

하지만 `빨리빨리`의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잊을 만하면 다시 터지곤 하는 각종 안전사고와 부실 공사들이다. 일종의 기회비용이라 치부하기엔 이로 인해 부상을 당하거나 심지어 생명까지 앗긴 당사자들에겐 치명적인 일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다.

물론 신속하게 진행해야 할 상황은 항상 존재한다. 예를 들면, 병원에서는 응급 환자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응급 상황이 아닌 경우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정해진 단계를 밟아 진료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오랜 기간 한국적 정서 속에 살아온 필자에게도 `빨리빨리`가 몸에 배어 있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것 중 하나가 빠르게 먹는 식습관이다. 바쁘고 여유 없던 전공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습관을 이제는 고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천천히 먹는 사람, 즉 slow eater가 되는 것을 올해 실천할 작은 목표로 설정했다.

천천히 먹기와 건강과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혈당지수(glycemic index, GI)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탄수화물은 소화기관을 거쳐 체내에 흡수되면서 포도당으로 분해돼 혈당을 올리게 되는데, 이 상승 정도를 계량화한 것이 GI이다. GI 수치는 각 식품 내 탄수화물 50㎎을 섭취한 뒤 2시간 동안의 혈당 상승 정도를 같은 양의 포도당과 비교해 나타낸다.

GI가 높은 식품을 섭취하면 혈당이 빠르게 상승해 췌장에서 인슐린이 과다 분비된다. 이것이 반복되면 췌장에 과부하가 걸리고, 결국에는 췌장의 인슐린 분비 기능 저하로 당뇨병이 생긴다. 백미와 현미의 100g 당 칼로리는 356과 350으로 유사하지만, GI는 각각 84, 56으로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GI가 70 이상인 고 GI 식품을 과다 섭취하면 당뇨와 비만 발생 가능성이 상승한다.

천천히 식사하면 영양소 흡수가 자연스럽게 지연되며 혈당 상승 속도가 낮아진다. 식품 고유의 GI는 변하지 않지만 소화기관으로 소량씩 들어가게 돼 혈당 변화 면에서 췌장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생긴다.

또한 천천히 먹는 것은 포만감을 오래 지속시키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먹는 속도와 비만 발생의 상관관계는 다양한 임상연구를 통해 증명된 바 있으며, 대체로 slow eater에서 fast eater에 비해 2배 이상 비만 빈도가 낮다고 한다. 따라서 천천히 먹기는 좋은 체중 조절 전략이기도 하다.

천천히 먹기는 소화과정에서 위의 부담을 덜어준다. 천천히 먹기 위해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음식물을 소량씩 입안에 넣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꼭꼭 씹은 후 식도로 넘기는 것이다.

이러한 구강 내 활동은 1차적으로 음식물 분쇄와 관련된 위의 부담을 덜어줄 뿐 아니라 씹는 활동 자체가 구강 및 위장관 내 소화효소 분비를 촉진해 음식물이 보다 완전하게 소화되는데 기여한다.

한편, 천천히 먹기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데 도움을 준다. 일정량 음식을 섭취한다는 결과 면에서 빨리 먹건, 천천히 먹건 섭취한 음식물 총량은 동일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차이가 있다. 바로 음식물의 맛 즐기기 면에서다. 맛을 느끼는 미뢰는 혀에 분포한다. 우리가 느끼는 미각은 미뢰의 감각과 후각에서 유래하므로 구강 내 음식이 있을 때 미각을 느낀다. 천천히 먹음으로써 보다 오랫동안, 그리고 섬세하게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천천히 먹는 과정이 주는 즐거움이다.

천천히 식사하기는 그 자체로 건강을 위한 좋은 습관이다. 건강하고 여유 있는 생활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다. 천천히 식사하기로 그 첫걸음을 떼어보자.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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