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연 대한치과의사협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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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들이 환자에게 흔히 하는 거짓말`이라는 유머시리즈를 독자들은 인터넷에서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버전의 이야기가 돌아다니지만, 그 중에 `아프면 손드세요`라고 하고선 정작 아파서 환자가 손을 들면 `원래 아파요` 내지는 그 손을 잡아 내리며 `참으세요`라고 한다는 내용이 현직 치과의사인 내 입장에서 가장 웃겼다. 진료실에서 실제로 자주 일어나기도 하지만 내 마음에 찔리기도 해서다.

치아나 치아주변조직에 염증이 너무 심하게 진행된 경우는 참 치료하기 어렵다. 염증이 심하면 정상적으로 중성이어야 하는 조직내 pH가 국소적으로 산성을 띠게 된다. 마취주사액은 중성에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도록 고안됐기 때문에, 국소적으로 산성이 된 조직에선 본래 가진 효력의 5% 정도 밖엔 나타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른 곳은 다 얼얼하게 마취가 됐지만 문제의 가장 아픈 부위만 마취가 되지 않아 아픔이 여전히 느껴지는 얄궂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환자는 아파서 눈물이 솟을 지경이라는 것을 이해하지만, 치과의사도 곤란하다. 마취액은 쓸 수 있는 용량이 정해져 있는데다, 이렇게 염증이 심한 경우 한계까지 들이부어도 문제의 그 부위는 거의 마취가 되지 않는다.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는 빠른 방법은 통증을 유발하는 그 염증조직에 직접 추가마취를 하거나 재빨리 외과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해 아프다고 올린 환자의 손을 얼른 잡아 내리며, "참으세요"라고 말하는 치과의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경우 마취가 잘 안될 것이 예상되는 환자에게 미리 아플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통상적인 수준의 마취를 시행해도 마취가 안된다면 추가 마취를 하겠지만, 완전히 마취될 때까지 아플 것이므로 잠시만 참아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상했던 그 상황이 벌어질 때, 원치 않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는데 환자분이 아플 것을 인지하고 있으므로 가능한 빨리 상황을 끝낼 테니 몇 초만 견뎌달라고 고지한다.

대부분의 환자분들은 내 설명을 이해하고 함께 인내할 수 있는데, 외국인 환자일 경우 어려움이 있었다. 나의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그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시킬지 고민이 됐다. 외국인환자와의 소통을 위한 진료실 회화공부를 도와주던 영어선생님은 그런 경우에 "플리즈 베어 위드 미(Please, bear with me)"라고 말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직역하자면 `나와 함께 참아달라`는 뜻이 되지만 관용적으론 `조금 기다리세요`라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고 한다. 하지만 단순한 "플리즈 웨이트 (Please wait)"와 다른 점은, 당신이 불편한 줄을 알고 있으며 기다리라는 말을 들은 당신뿐만 아니라 말하는 자신도 이 상황이 곤란해 빨리 해결하려 애쓰고 있으니 당신도 나와 함께 견디어 달라라는 뉘앙스가 있다는 것이다. 상호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것이다.

모교의 교수님의 말씀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치료를 하는 동안 당연히 치아에 집중을 해야 하겠지만, 소공포 아래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고 당부하셨다. 치료하다보면 아무래도 환부에 집중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환자는 사람이므로 지칠 수도 있고, 두려워하고 있을 수도 있다. 환자를 이해하고 이해시켜가며 치료하라는 뜻이다. 비단 치과의사뿐이랴. 사람이 사회를 이뤄 어우러져 살면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새해다. 다른 나라와 같은 일괄 봉쇄령은 없었으나, 실질적인 코로나19로 인한 비정상적 생활의 제한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범지구적인 전염병을 극복하기 위해 당연히 총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기준 없이 어제는 옳고 오늘은 틀린 식의 주먹구구 방역이 아닌 의학적 에비던스(evidence)에 근거한 신중한 정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체계적인 대책 없이 언제까지 국민들만 참으라고 할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직장인, 자영업, 아이, 노인, 접종자, 미접종자 구분할 것 없이 모두 우리 국민이고 사람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편함을 참으라고 당부하는 동시에 사려 깊고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비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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