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옥 세종시문화재단 예술사업본부장
김혜옥 세종시문화재단 예술사업본부장

"저는 직장생활하면서 종무식만 참여했었지, 시무식 참여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함께 일하는 직원에게 4년 전 들었던 이 말은 그 이후 `시무식`을 할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나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역시나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함께 했던 몇몇 직원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대부분의 문화재단이 비슷한 상황일 텐데 사업은 보통 1년 단위로 진행된다. 지원사업을 예로들면 연 초에 사업을 공모하고 심의를 통해 지원 예술인을 선정한 후 예산 교부와 정산작업을 끝으로 사업을 마무리하게 된다. 그리고 기간제 직원들은 연 초 채용공모 과정을 거쳐 2월쯤 입사를 하고 연말에 사업이 끝나면 계약이 종료되어 퇴사를 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 직원에게는 `정규직` 신분을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시무식`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우리 재단은 상황이 괜찮은 편에 속하는데, 때로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원 수가 더 많은 기관도 있다고 한다. 문화관련 공공기관에 비정규직이 많은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애초에 업무량을 고려한 인력계획이 마련되지 못하는 점도 있지만, 필요한 사업은 계속 늘어나는데 정규직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보니 `기간제`형태의 고용방식으로 보완하는 셈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시민의 욕구가 그 어느 때 보다 커졌지만, 지역의 경우 문화관련 업무를 추진할 공공 혹은 민간 기관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결국 문화재단에서 그 시간차를 비정규직으로 메우게 된다.

질문빈곤사회(강남순, 2021)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취약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두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먼저 근원적 해결을 위해서는 제도와 법령 같은 객관적 변화가 요구되는데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총체적 변화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의식과 가치관의 변화 같은 주관적 변화가 함께 필요하다는 것이다. 꼭 필요한 사업이어서 매년 지속되고 있음에도 1년마다 퇴사와 입사라는 행정절차를 반복하는 것은 어쩌면 예술지원 업무는 `누가 해도 상관없는 일`이라는 우리의 안이한 인식 때문은 아닐까? 문화예술 지원업무는 일회성이라거나 적어도 전문적인 분야가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이유들이 맞물리면서 `비정규직`이라는 처우는 쉽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소정의 성과가 나려면 일정 정도의 시간이 쌓여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시간이 쌓여야 하는 건 예술지원업무도 마찬가지다. 예술현장을 체감하며 쌓인 예술인과 예술 활동에 대한 이해, 숙련된 행정업무가 예술인들에게 더 좋은 방향으로 지원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소통하고 반영하고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다시 차 년도 사업에 환류 하는 일련의 과정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제도의 안정성, 일하는 사람의 안정감`이 담보돼야 한다.

명색이 문화관련 기관의 본부장이라면서 누구에게나 불편할 이런 이야기를 신년 주제로 꺼낸 것은, 다음 달이면 또 시무식에는 참석 못한 채 업무에 합류하게 될 전국의 수많은 `기간제` 직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할 동료들의 마음가짐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무식은 이미 끝났지만 굳이 한마디를 보탠다. "문화예술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니까, 사람이 쌓여야 문화예술도 쌓인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쌓이면 언젠가 우리의 시무식 풍경이 지금과는 분명 다를 거라는 소망도 함께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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