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만삭 아내 사망사건

2014년 8월 23일 오전 3시 40분쯤 경부고속도로 천안삼거리 휴게소 인근의 사고 현장. 40대(사고 당시 기준) 이모 씨가 승합차를 몰던 중 갓길에 주차된 8톤 화물차를 들이받아 조수석에 타고 있던 만삭의 캄보디아 아내가 숨졌다. 사진=충남경찰청
2014년 8월 23일 오전 3시 40분쯤 경부고속도로 천안삼거리 휴게소 인근의 사고 현장. 40대(사고 당시 기준) 이모 씨가 승합차를 몰던 중 갓길에 주차된 8톤 화물차를 들이받아 조수석에 타고 있던 만삭의 캄보디아 아내가 숨졌다. 사진=충남경찰청

`무죄에서 무기징역, 그리고 또 다시 무죄로.`

캄보디아 국적의 만삭인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모(52) 씨 사건을 두고 양극단을 오간 법원의 판단이다.

이씨는 아내를 피보험자로 원금만 95억 원에 달하는 보험 계약을 체결해 살해 의혹의 중심에 섰지만 6년간의 재판 끝에 혐의를 벗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정황 증거만을 놓고 법원의 판단이 수차례 뒤바뀐 것이다. 그 사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고 최근엔 변호사시험에서도 이 씨 사건의 판례가 시험문제로 출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형사사건은 최종 무죄로 결론 났지만, 보험금을 둘러싼 민사소송은 사건발생 후 1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진행중이며, 재판부에 따라 판단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잇따른 타살 정황, 직접 증거는 못 찾았다

이 씨는 2014년 8월 23일 오전 3시 40분쯤 차량을 몰고 경부고속도로 천안삼거리 휴게소 인근을 지나던 중 갓길에 정차된 8톤 화물차량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조수석이 위치한 차량의 우측이 크게 파손됐다. 조수석에는 캄보디아 아내 B(당시 24세) 씨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채 탑승하고 있었다.

임신 7개월차의 B 씨는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반면 안전벨트를 매고 있던 이 씨는 갈비뼈 등이 부러졌지만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이 사고에 대한 경찰 수사는 한 보험설계사가 금융감독원에 제보하고 나서야 본격화됐고 여러 의혹들이 불거졌다.

우선 이 씨는 아내인 B 씨를 피보험자로 삼성생명 등 11개사에 걸쳐 20여 건의 보험을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월 납입 보험료만 400만 원을 넘어섰다.

이 씨의 주변인들은 자영업자인 그의 월 수입이 1000만 원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취지로 증언했고, 사고가 발생하기 전 수 개월간 경제적인 여건이 악화됐음에도 보험 계약을 추가로 체결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사고 직후 접촉한 견인차 기사에게 아내의 동승사실을 알리지 않은 점과 B 씨의 가족들이 거부했음에도 곧장 화장장을 예약한 점 등도 수사 당국의 시야에 포착됐다.

B 씨의 혈흔에서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되자 B 씨를 깊은 잠에 빠지게 한 뒤 안전벨트를 푼 것이라는 검찰의 주장도 나왔다.

애초 이 씨가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범칙금을 낸 전력이 있는 점 등이 배경이었다.

그러나 이미 B 씨의 시신은 화장된 상태였고 체내 수면유도제 농도부터 정확한 사망 원인과 시점 등을 제시할 부검 기회는 사라진 뒤였다.

국과수 등에선 이 씨가 사고 직전 핸들을 고의로 틀어 조수석이 화물차 뒤편에 충돌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까지 나왔지만 모든 의혹이 직접적인 증거로 연결되지 못했다.

 

 

 

 

 

◇미심쩍은 정황, 결국엔 `타살은 가설일 뿐`

살인과 사기 혐의로 기소된 이 씨는 자신의 부채를 초과하는 정도의 자산이 있는 만큼 재정적으로 문제가 없는 데다가 장거리 운행으로 인한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났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사고로 B 씨만 숨진 상황에 대해 사고 결과를 사전에 예측할 수는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재판은 미심쩍은 정황들을 `간접 증거로 인정할 것이냐`하는 기로에 섰다.

검찰은 피해자가 사망한 데 이어 시신을 화장해 증거 파악이 불가능한 만큼 간접 증거를 토대로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명확한 물증이 없기 때문에 진술대로 졸음운전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씨에 대한 정황 들이 충분히 의심스럽지만 범행을 단정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반면 2심에서는 사고 당시의 정황을 간접적인 증거로 인정해 이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 씨의 보험 가입 내역과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휴대전화로 고속도로 사고 등을 검색한 점 등 여러 정황을 살해 동기의 간접 증거로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상고심에서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해당 사건에 대해 "고의로 화물차를 들이받았다는 것은 가설일 뿐 명확하지 않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재판부는 "고의로 사고를 일으켜 임신한 아내를 살해하려 했다면 그 동기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시 도로 여건상 사고를 위장해 B 씨를 살해하기로 하고 실행에 옮기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

이에 대전고법은 2020년 8월 파기환송심에서 살인과 사기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고, 지난해 3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다만 졸음운전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한 만큼 예비적 공소사실로 포함됐던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죄를 물어 금고 2년이 선고됐다.

 

 

 

 

 

◇아내의 한국어 실력, 민사소송 뒤집었다

당초 이 씨는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보험사들을 대상으로 보험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었고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되자 소송이 재개됐다.

우선 메리츠화재해상보험에 대한 1심 소송에서는 재판부가 이 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 씨는 2014년 초 메리츠보험의 자동차보험에 가입했으며 1억 원 한도의 손해배상 등 대인배상이 포함된 상품이었다.

그는 B 씨 몫의 대인배상 한도액 1억 원과 자동차 상해 사망보험금 1억 원의 상속분을 자신과 딸에게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1심 재판부는 총 1억 4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씨가 살인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것과 관련, "고의로 이번 사고를 일으켰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망인을 피보험자로 다수의 보험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있지만, 사망 보장 목적의 보험만 가입한 것이 아니라 질병 대비 또는 연금 목적 보험도 가입했고, 일종의 자산운용 수단으로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피보험자가 B 씨인 소송에서는 법원의 판단이 엇갈렸다.

쟁점은 B 씨의 한국어 실력이었다. B 씨가 보험 계약을 체결할 당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동의한 것이 아니라면 보험 계약이 무효로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삼성생명보험을 상대로 제기한 2억 원대의 1심 소송에서는 이 씨가 승소했다. 재판부는 B 씨가 보험 계약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한국어 실력을 갖췄다고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보험모집인이 `B 씨가 한국어를 잘 알아들었다`고 증언한 점과 꾸준히 한국어 공부를 진행했던 점 등을 근거로 들어 "보험 계약의 의미를 이해하면서 청약서에 자필로 서명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미래에셋생명보험과의 30억 원대 소송은 결과가 달랐다. 해당 소송을 맡은 1심 재판부는 B 씨가 한국말이 어눌했다는 증언에 초점을 맞췄고 약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계약을 맺은 것으로 판단해 보험사 측의 손을 들었다. 이 씨는 재판 결과에 불복 항소를 진행중이다.

이씨가 계약을 체결한 보험사는 11개사에 25건에 달하며, 교보생명보험과 흥국화재보험 등을 대상으로 10건 이상의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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