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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재발견-대청댐

2009-10-14기사 편집 2009-10-13 06:00:00

대전일보 > 사회 >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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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가뭄 걱정 덜고 전기·용수 공급하고…중부권 30년 지켜온 ‘삶의 젖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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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大淸湖)는 금강 본류를 막아 세워진 대청댐 건설로 인해 대전시 동구·대덕구를 비롯한 충북 청원군·옥천군·보은군 등 4개 군, 2개 읍, 11개 면에 걸쳐 조성된 인공호수이다. 저수면적은 72.8㎢에 이르고 호수 길이는 약 80㎞에 달한다. 저수량은 무려 15억t으로, 저수량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이다. 저수량 기준으로 가장 큰 호수는 강원도에 있는 소양호로 27억t이며 소양호의 면적은 1608㏊. 두 번째로 큰 호수는 충주호로, 충주호의 저수량은 27억5000만t, 면적은 67.5㎢이다.

다목적댐으로 건설된 대청댐의 높이는 72m. 높이 100m를 웃도는 인공 댐들을 생각하면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까이에서 본 대청댐은 시야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대청댐의 길이는 495m이다. 1970년대 세워진 4대강유역 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75년 3월 착공해 1980년 12월1일 완공됐다. 5년 8개월에 걸친 대역사였던 대청댐 공사는 당시 국내외 자본 1464억 원이 투입된 대규모 공사였다. 두 대의 초대형 수력발전기를 통해 연평균 20억㎾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으며 지난 한해 대전을 비롯한 인근 11개 지방자치단체에 50만2000t의 물을 공급했다.

대청댐 본댐이 위치한 곳의 행정구역은 대전 대덕구 미호동(渼湖洞). 미호동의 동쪽에서 북서쪽으로 휘감아 도는 금강의 모습이 호수 같고, 매우 아름다워 동네이름으로 물결 미, 호수 호자를 쓰게 됐다고 한다. 동네이름이 대청댐보다 먼저 지어졌으니 누가 이 같은 지명을 지었는지는 몰라도 선견지명이 있었던 셈이다. 하늘에서 보면 대청댐이 자리 잡은 곳은 다른 인공 댐들이 위치한 곳과 마찬가지로 표주박의 목, 긴 병의 목 같은 지형을 갖고 있다. 댐이 세워질 수밖에 없는 적지이기도 하다. 인근에는 물과 관련돼 있는 한자를 지명으로 쓰는 동네들이 더 있다. 용호동(龍湖洞), 황호동(黃湖洞), 부수동(芙水洞) 등으로, 이래저래 금강 본류가 흐르던 지형과 관련된 지명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청댐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로 전해진다. 이 시기 거의 해마다 홍수와 가뭄이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고 수돗물 등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목적에 따라서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금강유역 역시 한해 강수량 중 3분의 2가 여름철 두 달 동안 집중호우로 쏟아져 내린다. 즉 한해 총강수량은 부족하지 않지만 여름철에만 집중되는 특성 때문에 여름을 제외한 세 계절에는 물부족 현상을 겪기 십상이다. 게다가 대청댐 상류, 금강 최상류인 전북 진안군·장수군, 충북 옥천군 등의 한해 강수량은 우리나라 평균 강수량보다 100-200㎜가량 많은 장점도 대청댐 위치선정에 고려됐을 것이다.

대청댐 입지로는 현 위치 외에 충북 옥천군 등 네 개 지점이 검토되다가 현 위치로 최종 결정됐다고 한다. 인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가장 큰 대도시인 대전과 청주가 바로 인접해 있다는 점이 입지결정에 크게 작용했다. 물 사용량이 많은 대도시에 우선적으로 용수를 공급해야 하는데, 이들 도시와의 거리가 가까운 곳이 통수로 건설비용을 절약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대청댐 건설로 대전권과 청주권 등 중부권에 안정적으로 수돗물과 공업용수 등을 연간 1300만t씩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됐음은 물론 금강 중·하류권의 홍수조절도 가능하게 됐다.

다목적댐 공사로는 전국에서 다섯 번째였던 대청댐 공사는 쉽지 않은 공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청댐은 경제성 및 최대저수량과 배수 능력을 고려해 수문 하단부에는 콘크리트 중력식으로 댐을 만들고 석괴댐을 결합한 혼합 방식으로 건설됐다. 1974년 5월부터 수문을 설치하기 위한 기반공사가 시작됐는데 여름 장마철에는 수문 공사장까지 물이 넘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1980년 댐이 완공돼 같은 해 12월1일 역사적인 준공식이 거행됐다.

이렇듯 댐건설로 커다란 효과를 보게 됐지만 작은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댐건설로 이 지역의 연간 안개일수가 증가한데다, 가뭄이 지속되면 호수에 적조 현상이 발생해 골머리를 앓곤 한다. 또 집중호우가 내린 뒤이면 상류 산골짜기 등에서 떠내려온 쓰레기들로 대청호는 몸살을 앓고 있다.

그리고 4075세대 2만6000명이 넘는 이 지역 주민들이 정든 고향을 완전히 잃고 떠나야 했다.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가깝게는 인근 신탄진과 대전 시내를 비롯해 멀게는 경기도 남양 간척지, 산업단지 취락지 등으로 옮겨갔다. 댐이 세워지기 전에는 높은 산봉우리였지만 엄청난 수량을 가진 호수가 만들어진 뒤에는 섬으로 변한 곳으로 배를 타고 성묘를 가는 낯선 풍경을 연출하는 이들이 고향을 잃은 이 지역출신 이주민들이다. “국가가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이 지역 실향민들은 고향생각이 사무칠 때마다 대청호 수면을 바라보며 자신들이 살았던 고향마을을 짐작하는 것으로 향수를 달랜다. 이들은 언젠가는 돌아갈 희망이 있는 북한 출신 실향민들을 부러워할 정도이다.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은 대청댐 옆에 있는 대청호 자연생태관 안에 있는 향토관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이뿐만이 아니라 대청호에 서식하고 있는 어류·곤충·식물에 관한 표본과 입체영상자료 등도 전시되고 있다.

대청댐 준공으로 대전의 경우 상수도 공급체계가 바뀌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4년 현재의 세천지역에 고작 하루 평균 3400㎥의 수돗물을 생산하는 정수장이 세워졌던 대전에서는 1950-1960년대 유등천 등에서 수돗물을 얻는 산성취수장, 중리취수장, 신탄진취수장 등이 연이어 건설돼 수돗물을 공급했었다. 대규모 수돗물 공급원이 없다 보니 가뭄이 길어지면 물 공급이 끊겨 비상급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대청댐 준공이후 안정적인 물 공급이 가능해지면서 이들 취수장은 차례로 폐쇄됐고 현재는 월평정수장과 회덕정수장 등이 안전한 수돗물을 공급하는 기능을 맡고 있다.

수돗물 걱정이 없어진 지금 대청댐이 주는 것은 또 있다. 해발 200-300m에 위치한 대청호 주변 도로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일주하는데 세 시간 넘게 걸리는 이 길은 국내 어느 도로와 견주어도 호수와 주변의 자연풍경이 어우러진 길이 주는 아름다움과 시원함 등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 대청댐 주변이 아늑하고 아름다운 공원으로 새롭게 단장한 것도 대전 시민들에게는 작지 않은 보너스이다. 주말과 휴일이면 수많은 시민들이 나들이 오는 대전권 명소 중 하나이다.

대청댐은 또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완성되면 이 도시에도 물을 공급할 예정이다. 중부권의 젖줄이자 생명수인 대청호가 행정도시에도 안정적인 물 공급을 할 날이 계획대로 오기를 국민들은 고대하고 있다.

글 류용규 기자 realist@daejonilbo.com

사진 신호철 기자 canon@daejonilbo.com

자료사진=대전일보 DB·K-water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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