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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교사가 영혼을 갉아먹는 직업이 됐을까

2017-03-16기사 편집 2017-03-16 16: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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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 교수의 시네마 수프] 디태치먼트

첨부사진1네이버 스틸컷 갈무리
딸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습니다. 각 과목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이 열심히 준비하신 자료들을 보여주시며 "다양한 경험에 노출시키고, 복합적인 사고를 하도록 이끌고, 결과적으로 창의적인 사고를 하도록 만들겠다" 는 것이 오리엔테이션의 골자였습니다.

불편한 마음이 든 것은 "만들겠다" 부분이었습니다.

근래 쏟아지는 'AI(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사라질 직업과 살아남을 그리고 새롭게 생겨날 직업'에 대한 얘기들은 늘 '창의 융합형 인재'로 마무리 됩니다. 그래서 궁금해집니다. 정말 '교육을 통해 더 창의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물론 교육 그 자체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한국의 교육제도와 정책의 부분에서 드는 회의입니다.

영화 '디태치먼트'는 미국의 무너진 공교육을 보여줍니다. 대화와 소통에 무관심하고 저속하면서 쉽게 분노하고 소란스러우면서도 공허한 아이들, 상대의 나이와 직책 등과는 아무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무례한 아이들, 특정인을 향한 집단적 야유와 비난에 있어서는 쉽게 단결되는 아이들, 지나치게 이르게 왜곡된 성에 눈뜨고 탐닉하는 아이들. 그들을 교육시켜야 하는 선생들은 자신의 직업이 영혼을 갉아먹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상식을 벗어난 요구와 책임 전가의 윽박 만을 들려주는 부모들을 통해 그들이 가정에서 제대로 된 방향제시를 받지 못한 것은 당연하게까지 보입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삶을 너무나 어린나이에 자발적으로 망가뜨려 가는 것을 보며 급기야 정신적 한계에 다다르는 무력한 교사들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학교의 현실 때문에 주인공 헨리는 한 학교에서 꾸준히 학생을 가르쳐야 하는 정식교사가 아닌 임시교사로 이 학교, 저 학교를 다니며 한두 달의 단기간만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물론 빈민가에 위치한 일부 학교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어느 부분 우리의 모습이 비춰지는 것 같을까요. 비록 극단적인 모습을 그려냈지만 깊게 다가오는 지점은 교사들의 무력감입니다.

학생들과 상담을 진행하다 자주 "어릴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항상 집에 혼자 있었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직장을 다니는 엄마의 한사람으로 스스로도 많은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제 겨우 여섯 살, 아직 만 다섯 살도 못 채운 딸아이가 해질 무렵이 돼서야 유치원 통학버스에서 내려 엄마를 만나는 것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일하는 엄마들을 위한 종일반 학생인 딸아이가 밤마다 잠자리에 들며 다음날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며 "충분히 놀지 못했어"라고 하는 말이 '엄마, 아빠와 충분히 놀지 못했어'라고 고쳐 들립니다.

마감이 다가오는 일을 끝내지 못한 주말이면 하루 종일 어린이 채널이 나오는 케이블 티비를 베이비시터 삼아 아이를 한 없이 미디어에 노출시켜 놓게 됩니다. 그런 날이면 영락없이 짜증이 늘고 어딘가 퍽퍽해지는 아이의 감정 상태를 확인할 때 마다 살짝살짝 반성도 합니다. 가끔은 일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원인인데도 아이의 작은 잘못이나 장난에 감정의 폭발에 이르고 나서 돌아서서 슬슬 기어오르는 '자격미달 엄마'라는 자괴감을 애써 외면하기도 합니다.

아직 학교에 입학하기 전, 한가로운 오후 조용한 집안 거실에서 째깍째깍 들리던 시계소리가 때로는 편안하게도, 때로는 지루하게도, 그리고 때로는 무섭게도 느껴져 엄마를 찾아 방으로 뛰어 들어갔던 그 미묘한 감정의 순간들, 조용히 혼자 생각에 빠져들 수 있었던 고요의 시간들을 기억해 봅니다. 마당에 누워서 흘러가는 구름 안에서 이런 저런 모양들을 찾아내고 상상하던 시간들, 앞산 뒷산에 뛰어다니며 우주선이라고 생각하며 나무 둥치에 걸터앉아 비행하던 시간들, 하루 종일 개미굴을 파다가 결국 알이 가득한 개미집 내부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던 시간들을 기억해 봅니다.

한쪽 끝에서는 지나치게 빡빡한 스케줄에 따라 영재와 창의 인재로 만들어져야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다른 한쪽 끝에는 부모들과 함께 최소한의 시간도 함께하지 못하고 방치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양쪽 모두 다 부모들은 부재로 느껴집니다. 자녀들과 함께하는 시간보다는 자녀를 위한 정보 수집에 더 긴 시간을 들이는 부모도 다른 형태의 부재일 테니까요.

그리고 퍽퍽해지는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퍽퍽해진 교육현장입니다.

자기 아이라고 해도 자기 마음대로 기를 수도 없는 때입니다.

아이들을 어떠한 인재로 키우려는 교육보다도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행복한 유년기를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교육이 우선되는 교육체계와 정책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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