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통치자의 역할은 국민이 `훌륭한 삶`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고, 그 `훌륭한 삶`이 무엇인지 알려면 지적 능력과 윤리, 도덕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런 능력과 지식은 오직 철학자들만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정치권력을 철학자들에게만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의 주장대로 통치자를 반드시 철학자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철학자의 강점을 통치자가 갖고 있다면 나쁘지 않다. 철학자의 무기인 지식과 지혜, 덕 등은 요즘 널리 회자되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통해 상상 이상으로 체득할 수 있지 않을까.

`집단지성`을 떠올린 건 요즘 이 나라 국정 중 상당수 사안에서 시행착오가 잦고 삐거덕거리는 모습이 답답하기 때문이다. 우선, 경제에서 취업자 증가 폭이 5개월 연속 10만명대 아래로 떨어지며 고용 쇼크에 빠졌다. 일회성 쇼크가 아닌 만성 고질병으로 악화하는 추세다. `국정운영의 중심이 일자리`라고 말한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 무색해진다. 전국 308만 명 소상공인들은 또 다시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려는 기류에 반발해 내년 최저임금 기준을 따르지 않겠다는 `모라토리엄(지불 유예)`을 선언했다.

게다가 미·중 무역 분쟁이 확대되면서 수출 여건 악화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외 주요 기관들의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이 이어지더니 결국 한국은행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에서 2.9%로 낮춰 잡았다. 경제가 생기를 잃으면 민생이 피곤해진다. 대통령과 정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게 변한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69%로 3월초 이후 첫 60%대로 떨어졌다(한국갤럽). 문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첫 번째 부정 평가 이유는 `경제·민생 해결 부족`(45%)이었다. 국정 지지도는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조짐이 안 좋다.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찰스 리드비터는 그의 책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에서 유럽의 과학혁명은 정보 공유가 밑거름이 됐다고 말한다. 과학도들 간 다양한 정보 교류와 유형·무형의 협력, 경쟁이 새로운 발견들을 가능케 했으며, 이는 과학발전 및 혁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다양한 가치가 교차하고 다원화하면서 복잡성을 더해가고 있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사회체제에서는 대통령과 정부 등 특정권력이 지식이나 정보를 좌지우지하거나 개체들을 움직이기 어렵다. 개체들이 가지는 장점과 강점들을 집단지성으로 연결해 국정수행에 보탬이 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정치에서의 타협과 협치는 집단지성의 활성화로 가는 기본이자 핵심이다. 13일 새로 선출된 문희상 후반기 국회의장은 당선 인사에서 "후반기 국회 2년은 첫째도 협치, 둘째도 협치, 셋째도 협치가 최우선이 될 것임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아까운 세월을 많이 허송했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협치를 펴야 국정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민생이 고달프지 않다.

태국 암흑의 동굴서 유소년 축구팀 소년들과 코치 등 13명을 모두 구조할 수 있었던 기적은 다국적 구조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계 각국의 동굴 탐사 및 수중 잠수 전문가들은 수천㎞를 달려와 말 그대로 `집단지성` 구조 활동에 나섰고, 마침내 소중한 생명들을 살려냈다.

집단지성의 강점을 최대한 살릴 필요가 있다. 경제적 약자를 위한다는 최저임금제가 되레 약자에게 해가 돼서야 말이 되나. 소득주도 성장의 문제도 비슷하다. 소득이 올라가려면 성장도 필수다. 물론 성장일변도 주장은 옳지 않다. 성장 위주의 `낙수경제`는 엉터리임이 증명됐다. 맨 위에 있는 바가지는 물이 채워질수록 더 커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이 그래서 중요한 게 아닌가. 그 균형점은 집단지성을 통해 찾아야 한다.

정부·여당은 당장 야당과의 협치에 나서라. 또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라. 그러지 않고 몇몇 사람들의 주장이나 `청와대 이기주의`에 사로잡히면 문제들을 풀기 어렵다. 야당도 협치는 필수 덕목이다. 외면하면 더 망가진다. 최문갑 (시사평론가·`밸런스토피아`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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