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도시 배산임수 최적 지형

2004년 신행정수도 입지를 정할 때 `배산임수(背山臨水)` 기준이 주목받았던 적이 있다. 세부항목 중 가중치가 가장 낮았지만 국민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 때문에 체감 지수는 가중치보다 훨씬 높았다.

그래서 4곳의 후보지 중 연기·공주가 최종 후보지로 선정됐다. 산을 등지고 강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을 가지고 있었던 덕분이다. 차령산맥 지류인 천태산과 금강에 둘러싸인 명당이었던 것이다. 마치 금강이 전월산, 원수산, 국사봉, 장군봉을 에워싸듯 흐르고 있어 전체적으로 기가 모이고 국운을 번성케 할 곳으로 손색이 없는 지역으로 평가됐다. 지금의 중앙행정타운이 있는 행정도시가 바로 그곳이다.

1970년대 말 행정수도 이전 때도 배산임수로 꼽히는 장기지구가 가장 뛰어난 곳으로 지목된 바 있다. 당시 금강을 끼고 있는 장기지구가 유력 행정수도 후보지로 떠오른 까닭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태조 이성계가 계룡 신도안에 터를 닦았을 때도 국토의 중심이란 비중이 어느 정도 작용하긴 했지만 산과 강의 중요성이 강조된 배산임수의 영향을 무시하지 못했다.

이렇듯 과거나 현재도 도시의 입지를 고를 때 배산임수는 중요한 잣대임은 분명하다. 서울의 배산임수 중심에 한강이 있었다면 행정도시 세종의 중심에 금강이 자리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한강의 기적이 서울을 일으켰듯이 금강을 통한 행정도시 세종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2012년 첫마을 아파트 분양 때 금강 세종보를 배경으로 물 위에서 레저활동을 하는 사진이 눈길을 끈 적이 있다. 금강변에서 보트를 즐기고 파라솔 아래서 휴식을 취하는 그림 같은 모습은 수중보가 있어야만 가능한 장면들이다. 수중보는 당초 하천유량이 적은 금강의 수위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 구조물이었다.

금강의 봄철 갈수기 하천유량은 29.8㎥/s로 한강의 도시하천구간 한강대교의 211.7㎥/s의 13%에 불과했다. 금강의 홍수 설계빈도를 100년에서 200년으로 상향 조정하더라도 대청댐 차단과 과다한 골재채취 영향으로 하상이 낮아져 계획된 홍수위가 200년 빈도 홍수위보다 높아지는 걸로 분석했다. 하천유량이 적은 금강에 수위 유지용 보(洑)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강에 물이 차고 수환경이 좋아지면서 수변경관을 활용한 각종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수중보 덕택이었다. 수변경관을 배경으로 아파트뿐 아니라 공공청사, 교각 등 모든 분야에 금강 콘셉이 적용되면서 행정도시의 중심엔 금강이 자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수변경관을 배경으로 도시설계가 가능했던 수중보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것에 대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미 행정도시 개발계획에 담긴 수중보는 이명박 정부의 4대 강 사업에 포함되면서 당초 목적과 기능을 잃기 시작했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은 철거 논란으로까지 이르게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행정도시 친수공간 확보를 위해 계획된 수중보가 철거되면 행정도시 계획 자체를 훼손하는 사태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금강 물을 끌어다 쓰는 세종시 랜드마크인 세종호수공원의 용수 확보에 차질이 생길 게 뻔하다. 여기에 금강을 사이에 두고 행정도시 강남-강북을 연결할 금강 보행교 건설에도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이런 사태는 수변경관을 콘셉으로 한 여타 다른 계획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견되면서 수중보 철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세계 유수의 도시가 모두 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런던의 템즈 강, 파리의 센강, 뉴욕의 허드슨 강이 그렇다. 강이 있는데 물이 없는 도시는 죽은 도시나 마찬가지다. 한강이 없는 서울을 떠올리기 어려운 것처럼 금강이 죽은 세종은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금강의 기적이 세종에서 일어나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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