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문화가 융성했던 시기를 꼽으라면 단연 고려가 떠오른다. 상감청자는 오늘날로 말하면 세계적 명품 브랜드였다. 금속활자, 나전칠기 등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아름답고 세련된 제품들을 생산해냈다. 음식, 패션 등 고려인의 생활상인 `고려양`은 중국에 대유행했다.

고려를 번성케 한 요소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송이나 요, 금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정도의 군사력이다. 여기에 국가적으로 육성한 상업, 또 자유분방한 사회분위기가 어우러졌다. 중국과 북방민족, 일본, 멀리 아라비아의 상인들까지 국제무역항 벽란도에 모여들었고 코리아라는 이름은 세계로 퍼져나갔다.

10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요즘 `KOREA`란 단어가 세계 각지에서 회자된다. 유럽에선 손흥민, 미국에선 류현진의 활약이 눈부시고 김연아는 레전드가 돼 있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올랐고 방탄소년단은 가장 핫한 월드스타다. K-팝과 한류드라마가 인기를 얻게 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지금은 문화 전방위적으로 한류가 만개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국들 틈에서 어찌 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문화란 경직되지 않은 땅에서만 피어날 수 있는 꽃이다.

가장 먼저 기회를 잡았던 건 일본이다. 세계대전 후 태평양 시대의 거점이 된 일본은 한국전쟁을 발판으로 경제 성장을 이뤘다. 1960년대 변화를 요구하는 거대한 학생운동이 일어났지만 이 물결은 공통된 목표 없이 흘러갔다. 정부의 기동대 투입과 내분, 과격화 등 복잡하게 전개되다 결국 별다른 결실을 맺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으로 경제가 급성장하던 1980년대 선택의 순간이 왔다. 1989년 6월 4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학생과 시민의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다. 그러나 정부는 무력 진압을 선택했고 800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1만 4000명이 부상당했다. 수많은 이들이 체포되거나 해외로 망명했다.

한국의 1987년 6월 항쟁과는 다른 결말이다. 한류의 씨앗은 언제 뿌려졌을까. 최근 홍콩인들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공부한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택시운전사, 1987 등 영화를 보는 이도 많단다. 어쩌면 가장 큰 한류는 한국의 시민들, 민주주의가 아닐까.

이용민 지방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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